바다 없는 키르기스스탄이 상선법전을 만든 이유… 국적선 등록이 새 산업 될까
바다와 접하지 않은 키르기스스탄이 상선법전을 제정했다. 사디르 자파로프 대통령은 의회가 6월 24일 채택한 상선법전에 서명했으며, 대통령실은 8월 6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 법전의 목적은 상업적 해운을 규율할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키르기스스탄 국기를 단 선박의 등록과 운영에 필요한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내륙국가가 상선법전을 만드는 일은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제법상 해운국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해안이나 항만을 보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내륙국가에도 해양 접근권과 통과의 자유를 인정하고, 공해는 연안국과 내륙국 모두에 개방된다고 규정한다. 선박은 등록국의 국적과 국기를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내륙국도 자국 선박등록부를 운영할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이미 2024년 2월 국제해사기구(IMO)의 176번째 회원국이 됐다. 이번 법전은 IMO 가입 이후 국내 제도를 국제해운 규범에 맞추는 후속 단계로 볼 수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법전은 선박등록, 상업해운 관계, 관련 법정대리인 등록과 자격요건 등을 규정한다. 의회 심의 과정에서는 키르기스스탄 국기를 사용하는 선박등록부를 만들고 여러 국제해사협약 가입을 추진하는 구상도 제시됐다.
키르기스스탄이 기대할 수 있는 직접적 수익은 선박등록료와 행정서비스, 법률·보험·금융 등 연관 산업이다. 대규모 선대를 직접 보유하지 않더라도 외국 선주가 키르기스스탄에 선박을 등록하도록 유치하면 등록국으로서 수수료와 세수를 얻을 수 있다. 해운기업과 선박 소유구조를 관리하는 전문기관이 자리 잡을 경우 비슈케크가 중앙아시아의 해운 법률·기업서비스 거점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선박등록은 수익만 발생시키는 사업이 아니다. 국기를 부여한 국가는 해당 선박의 안전, 선원 자격, 환경규제와 국제협약 준수를 감독할 ‘기국 책임’을 진다. 등록선이 사고나 해양오염, 제재회피, 불법운송에 연루되면 등록국의 국제적 평판과 법적 책임이 함께 문제가 된다. 실제 선박이 세계 각지 항만에서 운항하더라도 키르기스스탄 당국은 소유주와 운영자를 확인하고 검사·인증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국제사회는 최근 허위 선박등록과 불투명한 실소유주 문제를 강화된 감독 대상으로 보고 있다. IMO는 2026년 신규·기존 선박등록부가 소유권 자료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등록과정에서 강화된 실사를 수행하도록 권고하는 첫 국제지침을 승인했다. 이 지침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새 등록부의 신뢰도를 판단하는 국제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키르기스스탄의 상선법전이 실질적인 산업정책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등록선의 실소유주와 운영사를 검증할 수 있는 행정역량을 갖춰야 한다. 둘째, 선박검사와 안전인증을 대행할 국제적으로 인정된 기관을 선정하고 감독해야 한다. 셋째, 제재회피나 ‘그림자 선단’에 이용되지 않도록 위험국가·선박·기업에 대한 등록거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지리적 한계도 남는다. 국적선을 등록하는 것과 키르기스스탄 화물이 저렴하게 바다로 나가는 것은 별개다. 실제 수출입 화물은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중국·러시아 등 주변국의 철도와 도로를 거쳐 항만으로 이동해야 한다. 유엔해양법협약도 통과 조건과 방식은 내륙국과 통과국 사이의 협정에 따라 정하도록 한다. 따라서 선박등록부가 성장하더라도 키르기스스탄의 높은 육상물류비가 곧바로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위 법전은 키르기스스탄이 ‘배를 보유한 국가’가 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국적선 등록과 국제해운 서비스에 참여할 제도적 입구를 만든 사건에 가깝다. 성공 여부는 등록 선박 숫자보다 등록 대상의 질과 감독능력에서 결정될 것이다. 초기 수입을 늘리기 위해 기준을 낮추면 단기간에 선박을 유치할 수 있지만, 부실선박과 불투명한 소유구조가 쌓이면 국가 전체가 위험한 편의치적지로 평가받을 수 있다.
출처
-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실, 「사디르 자파로프 대통령, 상선법전 서명」, 2026.08.06. https://www.president.kg/ru/sobytiya/ukazy
(대통령실 발표를 전한 보도: Tazabek, 「Садыр Жапаров подписал Кодекс о торговом мореплавании」, 2026.08.06, https://www.tazabek.kg/news:2513217 ) - 키르기스스탄 의회(조고르쿠 케네시), 상선법전 및 시행법안 3독회 채택, 2026.06.24~06.25. https://www.tazabek.kg/news:2492375
- 국제해사기구(IMO), 「IMO welcomes 176th Member State」, 2024.03.06. https://www.imo.org/en/mediacentre/Pages/WhatsNew-2046.aspx
- 국제해사기구(IMO), 「IMO approves new guidelines on ship registration」, 2026.04.17. https://www.imo.org/en/mediacentre/pressbriefings/pages/imo-approves-new-guidelines-on-ship-registration.aspx
-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7부(공해)·제10부(내륙국의 해양 접근권과 통과의 자유), 특히 제125조. https://www.un.org/depts/los/convention_agreements/texts/unclos/unclos_e.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