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서 먼저, 국민투표는 나중… 아르메니아 EU 가입 준비와 EAEU 양립 문제
-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8월 24일 EU 가입을 위한 공식 가입신청을 준비하는 절차를 조만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혀
- 파시냔은 EU에 먼저 신청한 뒤 유럽연합의 답변과 로드맵을 확인하고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순서를 제시... 국민투표의 날짜와 문항, EU 후보국 지위는 모두 미확정
- 러시아의 아르메니아산 검역대상 품목 제한과 EU 규범·EAEU 규범의 잠재적 충돌이 이미 논쟁으로 떠올라... 정치적 선언보다 관세·검역·수출시장·노동이동의 실제 비용이 향후 선택을 가를 가능성이 크다.
2026년 8월 24일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니콜 파시냔 총리는 의회에 2026~2031년 정부 프로그램을 설명하면서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공식 가입신청을 준비하는 절차를 조만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시냔은 아르메니아가 먼저 EU에 공식 신청서를 제출하고, 유럽연합의 답변과 향후 로드맵을 확인한 뒤 국민에게 선택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순서를 제시했다. 따라서 현재 단계는 EU 가입신청 완료나 후보국 지위 획득이 아니라 정부가 신청 준비에 착수할 가능성을 공식화한 단계다.
아르메니아의 친EU 움직임 자체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의회는 2025년 3월 EU 가입절차 개시에 관한 법률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법률은 국가의 정치적 방향과 절차 개시 의지를 국내법으로 표현한 것이지 EU에 제출하는 공식 가입신청서는 아니었다. 파시냔은 이번 연설에서 그 차이를 직접 설명했다. 가입의 현실성과 필요한 개혁, 예상기간을 국민에게 설명하려면 먼저 EU에 신청하고 공식 반응과 로드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투표의 순서를 둘러싼 설명도 중요하다. 파시냔에 따르면 EAEU 회원국 정상 4명은 지난 5월 아르메니아가 EU 가입과 EAEU 잔류 가운데 선택하는 국민투표를 가능한 한 빨리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공동입장을 냈다. 파시냔은 이를 우호적인 제안으로 평가하면서도 투표가 의미를 가지려면 국민이 실제 선택의 조건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공식 신청 → EU의 응답과 로드맵 → 국민투표’라는 순서를 제시했다. 국민투표가 언제 열리고 어떤 문항을 묻는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정치적 선택은 이미 무역문제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파시냔은 같은 연설에서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산 상품에 적용하는 제한이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의 규정에 어긋나며 이를 EAEU의 위기라고 평가했다. 아르메니아 국영통신 Armenpress에 따르면 러시아는 6월 12일부터 아르메니아산 검역대상 품목의 수입과 다른 EAEU 국가로의 경유를 제한했고, 러시아 측은 식물검역과 수의규정 위반을 이유로 들었다. 파시냔은 이를 러시아와의 단일시장 관계가 실제로 얼마나 안정적인지를 보여주는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러시아의 시각은 다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아르메니아가 EU 가입신청 이후 무역·식물검역·관세 관련 법률을 EU 규범에 맞추기 시작하면 EAEU 규범과 충돌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아르메니아에 경제적 손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러시아 측의 전망이며 아직 발생한 확정 손실은 아니다. 마르쿠스 람메르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대변인도 EU 가입에는 공식 신청이 필요하고 이후 능력과 성과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식 신청과 후보국 지위, 가입협상 개시는 각각 다른 단계다.
EU와 EAEU의 관계도 ‘신청서를 내는 순간 하나를 즉시 탈퇴해야 한다’는 식으로 단순화하기 어렵다. 공식 신청 뒤 실제 가입협상에 들어가면 관세와 통관, 식품·식물검역, 기술규정, 경쟁정책 등 다양한 법제를 EU 규범에 맞춰야 한다. 아르메니아가 현재 EAEU 공동관세와 단일시장 규칙을 적용하는 분야에서는 법제정비가 깊어질수록 충돌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언제 어떤 규정에서 선택이 불가피해지는지는 실제 가입협상과 EAEU 내부 협의의 진전에 따라 달라진다.
파시냔은 이번 선택을 외교노선보다 ‘대안의 확보’라는 논리로 설명했다. 그는 한 시장에 불균형하게 의존하는 것이 국가의 독립성을 제약할 수 있다며 수출입과 안보, 에너지 등에서 파트너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4~2026년 아르메니아가 석유제품을 20개 국가에서 수입한 사례도 다변화의 예로 제시했다. 이는 아르메니아 정부의 정책논리이며 EU 가입이 경제적으로 항상 더 유리하다는 객관적 결론은 아니다.
결국 이번 사건의 신규성은 아르메니아가 ‘유럽을 지향한다’는 선언이 아니라 신청과 국민투표의 구체적인 순서를 처음으로 보다 명확하게 제시했다는 데 있다. 향후 판단점은 정부가 실제 신청준비팀과 문서를 만들고 언제 신청서를 제출하는지, EU가 어떤 형태의 답변과 로드맵을 제시하는지, 러시아의 수입제한이 실제 교역손실로 얼마나 이어지는지다. 아르메니아의 선택은 정치구호보다 관세·검역·수출시장·노동이동과 같은 구체적인 제도비용이 드러날수록 현실적인 문제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출처
- 아르메니아 총리실, 「Речь премьер-министра Республики Армения Никола Пашиняна в Национальном Собрании в ходе обсуждения Программы правительства на 2026—2031 годы」, 2026년 8월 24일. https://www.primeminister.am/ru/statements-and-messages/item/2026/08/24/Nikol-Pashinyan-Speech/
- Interfax, 「В Кремле видят проблемы в предстоящем приведении законов Армении в соответствие нормам ЕС」, 2026년 8월 24일. https://www.interfax.ru/russia/1110932
- Interfax, 「В Еврокомиссии сообщили о ведущейся работе по сближению Армении с ЕС」, 2026년 8월 25일. https://www.interfax.ru/world/1111213
- Armenpress, 「Russia ready for dialogue with Armenia on phytosanitary controls, Deputy PM Overchuk says」, 2026년 8월 24일. https://armenpress.am/en/article/1258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