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된 BRICS, 합의는 어디까지 가능했나… 정상회의 전후 전문가들이 본 뉴델리 선언
- 정상회의 전후 전문가들은 결제 상호운용성·현지통화·NDB 같은 실무협력이 진전됐다는 점에는 대체로 주목했지만, BRICS의 지정학적 의미에는 서로 다른 평가를 내놔
- 인도 전문가, 서로 다른 국가를 묶는 ‘convening power’와 인도의 비(非)반서방 노선을 강조.. 러 전문가는 서방과 비서방 사이의 구조적 경쟁이라는 더 강한 해석을 제시
- 한국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중국·인도 접근을 전략적 연대가 아니라 ‘관리형 데탕트’로 봐야 한다고 평가
- 러시아 전문가들이 기대한 EAEU-BRICS 자유무역지대 등 일부 의제는 최종 선언에 반영되지 않아, 국가별 기대와 실제 공동합의 사이의 간극도 확인
9월 12~13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8차 BRICS 정상회의는 확대된 BRICS가 서로 다른 전략적 이해를 어디까지 공동문서로 묶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였다. 정상들은 뉴델리 선언을 채택해 유엔과 국제금융기구 개혁,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무역체제, 신개발은행(NDB), 국경간 결제, 인공지능과 공급망 등 광범위한 의제를 다뤘다. 그러나 정상회의 전후 전문가들의 평가는 한 방향으로 수렴하지 않았다. 일부는 서로 다른 회원국을 한자리에 묶어 합의를 만드는 능력을 BRICS의 성과로 봤고, 러시아에서는 이를 국제질서 변화의 일부로 보는 보다 강한 지정학적 해석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이번 회의의 주요 장면인 중국과 인도의 접근을 구조적 화해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금융 분야의 실제 합의는 ‘공동통화’보다 훨씬 실무적인 수준에 있었다. 뉴델리 선언 제90항은 브릭스 결제 태스크포스(BRICS Payment Task Force)가 국경간 결제를 효율화하기 위한 방안을 계속 검토하고, 결제·메시징 채널의 상호운용성을 연구하며 회원국 통화를 이용한 무역결제와 투자 방안을 논의한다고 적었다. 동시에 국가별 우선순위를 존중하고 하나의 방식이 모든 국가에 적용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선언 제115항은 NDB가 현지통화 금융과 자금조달원을 확대하도록 장려했다. 반면 선언 원문에서 ‘공통의 통화(common currency)’라는 문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정상회의 나흘 전인 9월 8일 Chatham House의 남아시아 선임연구원 치에티그 바즈파이(Chietigj Bajpaee)는 인도가 BRICS를 비서구적이지만 명시적으로 반서구적인 조직으로 만들지 않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뉴델리가 별도의 준비통화를 만드는 논의보다 국가통화 결제와 디지털 결제로 의제를 낮춰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종 선언이 실제로 공동통화 대신 결제시스템 상호운용성과 현지통화 사용에 초점을 맞춘 점은 이 사전 분석과 방향상 맞는다.
바즈파이는 동시에 확대된 BRICS가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인다고 보지 않았다. 이란과 UAE,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중국과 인도 등 회원국 사이에 별도의 갈등과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창립국 사이에서도 BRICS의 경제·개발 기능과 지정학적 기능에 대한 우선순위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가 최근 BRICS의 중요한 성과로 꼽은 것은 단일한 정책노선보다 서로 다른 국가를 같은 장으로 불러모으는 ‘convening power’였다. 이 평가는 뉴델리 선언의 모든 항목이 강한 공동정책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보다는, 합의를 만들 수 있는 분야와 차이를 남겨둔 분야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해석이다.
러시아 전문가들 가운데는 BRICS에 훨씬 큰 지정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확인된다. 발다이 국제토론클럽의 티모페이 보르다체프(Timofei Bordachev)는 9월 10일 글에서 세계정치가 서방과 비서방 사이의 구조적 경쟁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 BRICS를 자신이 ‘세계 다수’라고 부르는 국가군의 주요 제도적 공간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 다만 그의 글도 비서방 국가들이 단일한 세계경제 발전 구상을 공유하지 않으며 이들이 단기적으로 군사동맹과 같은 결속된 연합을 만들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명시한다. 따라서 보르다체프의 분석은 BRICS가 이미 단일한 ‘반서방 동맹’이 됐다는 사실 확인이 아니라, 러시아 내에 있는 강한 지정학을 강조하는 관점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예카테리나 라베츠카야(Ekaterina Labetskaya)가 정상회의 전날 내놓은 전망은 러시아가 기대한 의제와 실제 공동합의 사이의 차이도 보여준다. 라베츠카야는 EAEU와 BRICS 국가들 간 자유무역지대 협상, 새로운 물류·운송로를 기업에 중요한 의제로 꼽았고 중동의 불안 속 북극항로의 전략적 가치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종 뉴델리 선언에는 Eurasian Economic Union 또는 EAEU-BRICS 자유무역지대가 명시되지 않았다. 선언은 물류·공급망과 운송 협력을 다루지만 러시아 전문가가 기대한 유라시아경제연합과 BRICS의 FTA 구상이 이번 정상회의의 공동합의가 됐다고 볼 근거는 없다.
한국에서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나타난 중·인 접근을 보다 신중하게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상회의 첫날인 9월 12일 전재성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서울대 교수와 임재현 EAI 연구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7년 만의 인도 방문과 뉴델리 BRICS 참석을 중·인 관계의 근본적 전환이 아니라 ‘관리형 데탕트의 연장’으로 평가했다. 8월 특별대표 회담에서 국경관리와 수문 데이터 등 절차적 진전은 있었지만 영토 쟁점의 실질적 양보는 확인되지 않았고, 투자규제와 비자 문제 등 기업 현장의 장벽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모디 총리와 시 주석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중국과 인도의 전략적 연대가 복원됐다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상회의 종료 직후에는 보다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O.P. Jindal Global University의 Sreeram Chaulia 교수는 9월 13일 ANI 인터뷰에서 인도가 회원국들의 모순과 차이를 관리하면서 ‘공유 가능한 최소 공통분모’를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실제 뉴델리 선언은 중동·서아시아 문제에서 ‘각자의 국가적 입장을 상기하면서’라는 단서를 사용했고, 금융에서도 모든 국가에 하나의 해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서로 다른 이해를 없애기보다 합의 가능한 문구와 실무 의제를 만드는 방식이 사용됐다는 점은 확인된다. 다만 Chaulia의 ‘외교적 성공’이라는 평가는 전문가의 평가이며, 선언의 장기적 이행성과가 이미 입증됐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시각을 종합해도 BRICS의 성격을 하나의 문장으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확인 가능한 것은 뉴델리 선언이 결제 상호운용성, 현지통화 사용, NDB의 현지통화 금융, 공급망·기술·개발 협력 등에서 후속 실무를 이어가기로 했다는 점이다. 반면 BRICS가 어느 정도까지 지정학적 블록으로 발전할 것인지, 중·인 접근이 조직의 장기적 응집력을 높일 것인지, 러시아가 제시해온 유라시아 경제·물류 구상이 공동의제로 전환될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린다. 2027년 중국 의장국에서 결제·개발금융·제도연속성 의제가 실제 실행계획으로 구체화되는지, 그리고 중·인 관계의 관리된 완화가 지속되는지가 이들 상반된 평가를 검증할 다음 관찰 지점이다.
출처
- Prime Minister’s Office, Government of India, 「BRICS New Delhi Declaration: Building for Resilience, Innovation, Cooperation and Sustainability」, 2026.09.12.
https://www.pmindia.gov.in/en/news_updates/brics-new-delhi-declaration-building-for-resilience-innovation-cooperation-and-sustainability-september-12-2026/ -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Xi Jinping to Attend the 18th BRICS Summit in India」, 2026.09.10.
https://www.mfa.gov.cn/wjdt_674879/wsrc_674883/202609/t20260910_12019913.shtml - Prime Minister’s Office, Government of India, 「PM’s Bilateral Meeting with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2026.09.12.
https://www.pmindia.gov.in/en/news_updates/pms-bilateral-meeting-with-chinese-president-xi-jinping-2/ -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Eight Points of Outcomes and Consensus for the 25th Round of Talks Between Special Representatives of China and India on the Boundary Question」, 2026.08.26.
https://www.mfa.gov.cn/eng/wjbzhd/202608/t20260826_12011002.html - New Development Bank, 「Opening Remarks by H.E. Mrs. Dilma Rousseff, President of the New Development Bank, at NDB 2026 Annual Meeting」, 2026.
https://www.ndb.int/insights/opening-remarks-by-h-e-mrs-dilma-rousseff-president-of-the-new-development-bank-at-ndb-2026-annual-meeting/ - Chietigj Bajpaee, 「The India–China Reset Will Continue at the BRICS Summit」, Chatham House, 2026.09.08.
https://www.chathamhouse.org/2026/09/india-china-reset-will-continue-brics-summit - Timofei Bordachev, 「Non-Alignment No Longer Exists」, Valdai Discussion Club, 2026.09.10.
https://valdaiclub.com/a/highlights/non-alignment-no-longer-exists - Ekaterina Labetskaya, 「Кремль уверен в успехе саммита БРИКС в Индии」, IMEMO RAS, 2026.09.11.
https://www.imemo.ru/news/events/text/kremly-uveren-v-uspehe-sammita-briks-v-indii-kommentariy-ekaterini-labetskoy?ret=498 - 전재성·임재현, 「시진핑 7년 만의 인도 방문: 중·인 관계 해빙의 구조적 한계와 한국의 대응」, 동아시아연구원(EAI), 2026.09.12.
https://global.eai.or.kr/ko/reports/990586 - ANI, 「BRICS New Delhi Declaration Reflects India’s Diplomatic Success, Turns Diversity into Strength, Say Experts」, The Tribune, 2026.09.13.
https://www.tribuneindia.com/news/world/brics-new-delhi-declaration-reflects-indias-diplomatic-success-turns-diversity-into-strength-say-expe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