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다극질서’부터 ‘다벡터 외교’까지… 러시아·유라시아는 뉴델리 BRICS 합의를 어떻게 읽었나

유라시아뉴스 편집국 2026. 9. 14. 22:26

- 러시아와 유라시아의 현지 보도는 같은 뉴델리 합의를 서로 다른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해석

 

- 러시아 공식담론은 다극질서와 서방 중심 구조의 변화를 강조했지만, 비국영 RBC는 이란-UAE 갈등과 중국-인도 관계 등을 들어 BRICS의 ‘결속력 시험’에 초점을 맞춰

 

- 카자흐스탄 KISI 전문가는 BRICS 참여를 진영 선택보다 파트너·자본·기술의 선택지를 넓히는 다벡터 외교의 수단으로 보고, 참여 자체가 관세·인증·물류비 문제를 자동 해결하지 않는다고 지적

 

- 아제르바이잔 현지 매체들은 회원국 간 이해충돌과 인도의 조정 부담을 부각

 

 

같은 뉴델리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두고 러시아와 유라시아의 현지 보도는 서로 다른 장면을 중심에 놓았다. 러시아의 공식 담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BRICS를 다극질서와 서방 중심 구조의 변화라는 큰 틀에서 읽었다. 반면 러시아의 비국영 경제·정치 매체 RBC는 정상회의 직전부터 이란과 UAE의 갈등을 비롯한 내부 균열이 공동선언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결속력 시험’으로 다뤘다. 카자흐스탄의 국영 계열 Kazinform이 인터뷰한 대통령 산하 연구소 전문가는 BRICS를 특정 진영에 들어가는 문제보다 파트너·자본·기술을 다변화하는 실용적 플랫폼으로 해석했다. 아제르바이잔의 현지 분석매체는 전쟁과 영토분쟁, 중국-인도 경쟁을 비롯한 이해충돌을 정상회의의 배경으로 강조했다.

 

실제 공동합의의 기준점은 9월 12일 공개된 뉴델리 선언이다. 선언은 유엔과 국제금융기구 개혁, WTO 중심 다자무역체제, 국제법에 반하는 일방적 경제제재와 2차 제재 반대, 신개발은행(NDB), 국경간 결제와 기술·개발 협력 등을 담았다. 금융 분야에서는 BRICS Payment Task Force가 결제·메시징 채널의 국경간 상호운용성을 연구하고 회원국 통화를 이용한 무역결제·투자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NDB에는 현지통화 금융 확대를 장려했다. 그러나 선언은 국가별 우선순위가 다르며 하나의 결제방식이 모두에게 맞을 수 없다고 명시했고, 공동의 통화(common currency)라는 표현도 확인되지 않는다. 

 

 

러시아 공식담론은 ‘다극질서’... RBC는 ‘결속력’에 먼저 주목

 

러시아 정상의 발언은 브릭스를 국제질서 변화와 연결했다. 러시아 대통령실이 공개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의 발언은 다극질서의 형성과 이를 제약하는 관세·제재·경제적 압박을 주요 문제로 제시했다. 러시아의 대표적 국제정치 전문가 가운데 티모페이 보르다체프도 정상회의 이틀 전 발다이 국제토론클럽 기고에서 브릭스를 이른바 ‘세계 다수’의 주요 제도적 공간으로 놓고 서방과 비서방 사이의 구조적 경쟁이라는 큰 틀을 제시했다. 다만 보르다체프 역시 비서방 국가들이 하나의 경제질서 구상을 공유하거나 군사동맹 수준으로 결집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러시아 민간 미디어의 접근은 공식 정치수사보다 내부 조정의 난도를 더 직접적으로 부각했다. RBC는 9월 12일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뉴델리 회의를 ‘브릭스 결속력의 시험’으로 규정했다. 특히 5월 BRICS 외교장관회의에서 이란과 UAE의 대립 때문에 공동성명 도출이 어려웠던 전례를 상세히 짚고, 중국-인도 관계와 브라질의 국내정치, 사우디아라비아의 불분명한 지위까지 조직의 응집력 변수로 묶었다. 같은 날 선언이 채택된 뒤 RBC는 협상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로이터 통신(Reuters)의 취재를 전하면서도 인도가 중재를 통해 공동문서를 도출했다고 보도했다. 정상회의 전에는 ‘합의가 가능한가’가 질문이었다면, 선언 채택 뒤에는 ‘차이를 안고 어느 정도까지 합의했는가’가 보도의 초점이 된 셈이다.

 

러시아 전문가가 기대했던 의제와 실제 합의 사이의 간극도 확인된다. IMEMO의 예카테리나 라베츠카야는 9월 11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브릭스 국가들 사이의 자유무역지대 협상, 신규 물류·운송로, 북극항로의 전략적 가치를 주요 의제로 거론했다. 그러나 최종 뉴델리 선언에는 EAEU나 EAEU-BRICS 자유무역지대가 명시되지 않았다. 이번 선언에는 BRICS 차원의 운송·물류 협력과 공급망 논의가 들어갔지만 러시아 전문가가 제시한 유라시아경제연합 연계 구상이 이번에 공동합의로 승격됐다고 볼 수는 없다. 

 

 

카자흐스탄은 ‘블록 선택’보다 선택지 확대와 실무 성과를 강조

 

카자흐스탄에서 확보한 해설은 러시아의 지정학적 담론과 상당히 다른 강조점을 보였다. 카자흐스탄 국영 통신사인 카즈인포름(Kazinform)은 9월 13일 인터뷰한 아이다르 쿠르마셰프 대통령 산하 카자흐스탄전략연구소(KISI) 아시아연구부장은 브릭스 파트너국 참여의 의미를 특정 진영에 들어가는 문제보다 파트너, 자본, 기술의 선택지를 넓히는 데서 찾았다. 

 

쿠르마셰프는 러시아와 중국이 이미 카자흐스탄 외교·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브릭스 플랫폼은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UAE, 브라질, 남아공 등과 프로젝트·시장 연결을 시험할 추가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참여 그 자체가 관세와 인증, 배송비를 없애는 것은 아니며 각각의 문제는 별도의 협정과 상업조건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정상회의장에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특사와 UAE 왕세자 등을 별도로 만난 사실도 브릭스 참여와 미국·중동 국가와의 관계를 병행하는 다벡터 외교의 사례로 해석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브릭스 플러스(BRICS Plus) 연설도 이 실무적 접근을 공식 차원에서 보강했다. 카자흐스탄 정부·대사관 공식 게시본에 따르면 토카예프는 2025년 카자흐스탄과 브릭스 회원·파트너국의 교역액이 약 720억 달러(한화 약 96조 9,000억 원)에 달했다고 밝히고, EAEU 의장국으로서 BRICS와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EAEU와 인도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작업을 진전시키자고 제안했다. 이는 러시아 전문가가 사전에 거론한 EAEU-BRICS FTA와는 다른 제안이다. 토카예프는 인도의 BRICS 물류·공급망 협력 프레임워크도 환영했지만, 최종 뉴델리 선언 제104항은 운송협력을 확대할 때 모든 회원국의 주권과 영토보전을 존중한다는 조건을 명시했다. 

 

이 접근은 BRICS 가입·파트너국 지위를 곧바로 경제적 시장접근 보장으로 보는 시각과 거리가 있다. 쿠르마셰프는 정치적 대화가 기회를 만들 수 있지만 실제 효과는 생산시설, 신규 수출품목, 지속적인 계약처럼 실행 가능한 성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KISI가 대통령 산하 연구소이고 카즈인포름도 대통령 TV·라디오 복합체 소속이라는 점에서 이를 카자흐스탄의 독립 민간여론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국가 제도권 내부에서도 BRICS를 ‘반서방 블록 참여’보다 다벡터 외교와 경제적 선택지 확대의 도구로 설명하는 담론이 확인된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아제르바이잔 현지 매체는 내부 균열과 인도의 조정 부담을 전면에

 

아제르바이잔의 정보·분석 사이트 Caliber.Az는 9월 12일 정상회의 개막 기사에서 BRICS를 ‘복잡한 전쟁과 경쟁하는 이해관계의 그늘 아래’ 열린 회의로 규정했다. 이란을 둘러싼 전쟁과 중동 갈등, 중국-인도 경쟁, 영토분쟁, 신규 회원들의 서로 다른 이해를 한꺼번에 제시하면서 확대된 BRICS에서 주요 지정학적 현안에 대한 공동 입장을 만들기가 이전보다 복잡해졌다고 분석했다. 같은 지역의 APA도 정상회의 직전 인도가 이란-UAE의 이견을 중재해야 하는 상황에 주목했다. 

 

 

위 보도들만 보면, ‘러시아·유라시아의 BRICS 평가’라는 단일한 방향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러시아 공식담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국제질서의 다극화와 제재·금융자율성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했다. 러시아의 비국영 RBC는 BRICS가 확대 이후의 결속력과 공동문구 도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편 카자흐스탄의 대통령과 제도권 전문가는 BRICS를 다벡터 외교와 경제적 선택지 확대의 플랫폼으로 설명하면서도 관세·인증·물류 같은 실무장벽이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제르바이잔 현지 분석매체는 전쟁과 전략적 이해충돌을 합의의 제약으로 전면에 놓았다. 동일한 뉴델리 합의가 각국의 외교·경제 전략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 이번 현지 자료 비교에서 확인된다.

 

 

출처

 

공동합의·공식 기준자료

러시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카프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