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보는 모스크바의 90년... 시대상은 담은 역들은?
1935년 첫 13개 역에서 2026년 17번째 노선까지, 모스크바는 지하에 어떻게 시대를 남겼나
- 모스크바 지하철은 1935년 대도시의 교통수요를 처리하는 인프라로 출발했지만, 동시에 건축과 미술을 통해 새로운 수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공공간으로 설계
- 전쟁기의 방공·생활공간, 전후의 기념비적 역, 1955년 이후의 표준화, 후기 소련기의 개별 주제 강화가 겹치면서 역의 모습은 시대별로 달라져
- 2010년대 이후에는 개별 역의 건축뿐 아니라 BKL·MCC·MCD와 16·17번째 지하철 노선을 연결하고 재편하는 광역 네트워크가 모스크바 도시철도를 읽는 또 하나의 핵심 축으로
모스크바에서 지하철을 타다 보면 같은 노선도 안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건축을 만난다. 흰 기둥과 간접조명이 만드는 1930년대의 공간을 지나면 전쟁 중 문을 연 역이 나오고, 몇 정거장 뒤에는 거대한 샹들리에와 모자이크로 장식된 전후 역이 등장한다. 다시 이동하면 타일과 반복되는 기둥을 앞세운 1960년대 표준역이 나타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니다. 모스크바가 지하철에 요구한 역할 자체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1935년 13개 역으로 출발한 모스크바 지하철은 도시교통시설이면서 새로운 수도를 보여주는 공공건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시민의 대피·생활공간이 됐고, 전후에는 승전과 역사서사를 표현하는 기념비가 됐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경제성과 표준화가 앞섰으며, 후기 소련에는 합리화된 건설방식 위에 역별 문화와 장소의 이야기가 다시 두드러졌다.
오늘날 변화의 중심에는 또 다른 축이 생겼다. 개별 역의 디자인과 함께 여러 철도체계를 얼마나 잘 연결하고, 기존 구간을 어떻게 재편하느냐도 중요해졌다. 모스크바 지하철 90여 년을 대표적인 역들을 따라가며 살펴봤다.
1935년 — 새로운 수도의 지하를 만들다
모스크바 지하철 건설을 명시한 당 중앙위원회 결의는 1931년 6월 15일 채택됐다. 4년 뒤인 1935년 5월 15일 소콜니키에서 파르크 쿨투리까지, 그리고 도심에서 스몰렌스카야 방향으로 갈라지는 첫 구간이 문을 열었다. 모스크바 메트로 공식 연혁 기준으로 첫 구간은 11.2km, 13개 역이었다.
새 지하철에는 두 가지 목적이 겹쳐 있었다. 급속히 커진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승객을 운송할 현대적 교통수단이 필요했다. 동시에 지하 공간 자체도 새로운 수도의 건축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장소가 됐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의 러시아·유라시아사 연구자 제임스 T. 앤드루스 교수는 초기 모스크바 지하철이 단순한 교통시설만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는 2016년 인터뷰에서 지하철의 한 축은 급증하는 대중교통 수요를 처리하는 실용적 기능이었고, 다른 한 축은 사회주의 국가의 성취를 보여주는 기념비적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1935년 개통한 크로포트킨스카야는 이 두 요소가 만나는 대표 사례다. 당시 이름은 ‘드보레츠 소비에토프’, 즉 ‘소비에트 궁전’이었다. 슈추세프 건축박물관의 설계자료에 따르면 이 역은 인근에 계획된 거대한 소비에트 궁전의 지하 전실처럼 기능하도록 구상됐다.
궁전은 결국 완공되지 않았지만 역은 남았다. 흰 대리석과 위로 벌어지는 기둥, 기둥 상부에 숨긴 조명으로 만들어낸 밝고 열린 공간은 이후 전후기의 화려한 역과도 상당히 다른 인상을 준다.
이 때문에 모스크바 지하철의 출발을 단순히 ‘지하 궁전의 탄생’이라고 요약하기는 어렵다. 초기부터 교통기술, 도시계획, 건축적 상징이 함께 움직였다.
1941~1945년 — 전쟁이 지하철의 기능을 바꾸다
1941년 독소전쟁은 지하철의 용도를 크게 바꿨다. 전쟁 전에 건설된 역들은 처음부터 방공호로 설계된 시설이 아니었다. 그러나 1941년 7월 모스크바 공습이 시작되면서 일부 시설을 보강하고 밀폐설비를 설치했다. 같은 해 9월 21일 모스크바 소비에트 집행위원회는 지하철을 방공호로 사용하는 규칙을 별도 의무결정으로 정했다.
이후 역과 터널은 수십만 시민이 공습을 피하는 대피공간이 됐다. 지하에는 의료공간과 식품판매소, 도서관 등이 마련됐고 공연과 영화상영도 열렸다. 전시 지하철에서 아이들이 태어난 기록도 남아 있다. 그러나 전쟁기의 지하철을 방공호 이야기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전쟁 중에도 건설은 이어졌다.

대표적인 역이 노보쿠즈네츠카야다. 이 역은 1943년 11월 20일 문을 열었다. 오늘날 역 천장을 장식하는 모자이크들은 전쟁이 건설계획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여준다. 알렉산드르 데이네카의 도안을 바탕으로 한 모자이크들은 블라디미르 프롤로프의 봉쇄된 레닌그라드 작업실에서 1941년 가을과 겨울에 완성됐고, 라도가호의 ‘생명의 길’을 거쳐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프롤로프는 봉쇄 중 사망해 작품이 역에 설치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 작품들은 원래 노보쿠즈네츠카야를 위해 계획된 것도 아니었다. 당초 후일의 파벨레츠카야에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전쟁으로 설계와 시공계획이 바뀌면서 노보쿠즈네츠카야에 자리 잡았다. 역 하나에 전쟁기의 물자 부족, 설계 변경, 봉쇄된 레닌그라드의 작업과 모스크바 지하철 건설의 지속이 함께 남은 셈이다.
전후 — 지하철이 기념비가 되다
전쟁이 끝난 뒤 지하철의 공간은 다시 달라졌다.전후 역들에서는 승전과 러시아·소련의 역사, 국가적 서사를 표현하는 장식이 한층 강하게 나타났다. 1950년대 초 개통한 환상선의 여러 역이 이를 보여준다.

그 가운데 콤소몰스카야 환상선 역은 가장 선명한 사례다. 1952년 1월 30일 개통한 이 역의 중심 설계자는 알렉세이 슈추세프였다. 그러나 슈추세프는 1949년 사망해 완공을 보지 못했다. 모스크바 문화유산 등록문서에는 슈추세프와 함께 V. D. 코코린, A. Yu. 자볼로트나야, V. S. 바르바닌 등 공동 설계진이 역의 건축가로 함께 기록돼 있다. 천장의 대형 모자이크는 파벨 코린의 도안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알렉산드르 넵스키, 드미트리 돈스코이, 미닌과 포자르스키, 쿠투조프, 수보로프 등 러시아 역사 속 전쟁과 승리의 인물과 장면이 중앙홀을 따라 이어진다.
중요한 점은 오늘 보는 콤소몰스카야가 1952년 개통 당시 상태를 그대로 보존한 공간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탈린이 등장했던 두 모자이크 패널은 탈스탈린화가 진행되던 1963년 철거·교체됐고, 현재는 ‘승리의 개선’과 ‘붉은광장에서 연설하는 레닌’ 장면이 자리한다. 역이 한 시대를 반영할 뿐 아니라 다음 시대가 이전 시대의 흔적을 어떻게 다시 썼는지까지 보여주는 셈이다.
이 역을 1935년의 크로포트킨스카야와 비교하면 같은 ‘스탈린 시대’라는 하나의 표현만으로 두 시기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도 드러난다.
크로포트킨스카야가 비교적 절제된 기둥과 빛, 공간감을 앞세웠다면 콤소몰스카야는 거대한 중앙홀과 샹들리에, 금빛 장식, 역사 모자이크를 결합했다. 전후 지하철은 이동공간에 국가적 기억을 새기는 기념비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었다.
1955년 이후 — ‘과잉’을 줄이고 표준화를 택하다
1955년 11월 4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각료회의는 「설계와 건설의 과잉 제거에 관하여」라는 결의를 채택했다. 이 문서는 지하철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아니었다. 소련의 건축과 건설 전반에서 불필요한 장식과 비용을 줄이고 표준설계, 산업화된 시공, 경제성을 강화하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지하철도 이 변화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1955년 결의가 발표된 순간 역 디자인이 일제히 바뀐 것은 아니다. 이미 설계되거나 공사가 진행 중인 역이 있었기 때문에 변화는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났다.

그 결과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1961년 개통한 페르보마이스카야다. 모스크바 건축위원회에 게재된 건축전문가 알렉산드르 즈메울은 이 역이 조립식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첫 표준형 얕은 3경간 기둥식 역이라고 설명한다. 40쌍의 기둥이 반복되는 구조 때문에 이런 유형에는 러시아어로 ‘지네’를 뜻하는 ‘소로코노시카’라는 별명도 붙었다. 콤소몰스카야와 비교하면 차이는 즉각 눈에 들어온다. 대형 역사화와 금빛 모자이크보다 반복 가능한 구조, 단순한 마감, 경제적인 시공이 앞에 나온다.
그러나 이를 ‘예술을 버린 퇴보’라고만 설명하면 당시 정책이 추구한 다른 목표를 놓치게 된다. 즈메울은 이 구조가 단순한 절약만을 뜻한 것이 아니라 기술진보와 혁신, 기술적 미학에 대한 관심도 표현했다고 평가한다. 공장에서 제작한 구조물과 표준화된 설계를 이용해 더 빠르고 경제적으로 도시 인프라를 확장하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기술적 현대화의 한 방식이었다. 전후의 기념비적 건축과는 다른 종류의 ‘진보’가 지하 공간에 나타난 것이다.
1970~1980년대 — 표준화된 기술 위에 역마다 다시 주제가 생기다
표준화가 이후 모스크바 지하철을 완전히 획일적인 공간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모스크바 건축위원회의 해설에 따르면 1960년대 말부터 예술적 삽입물이 다시 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중반에는 도자 타일 대신 대리석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었으며, 1980년대에는 천장 등 공간구성도 다양해졌다. 합리화된 구조는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서 차별화가 확대된 것이다.

1975년 개통한 푸시킨스카야가 이를 보여준다. 역은 흰 대리석을 중심으로 마감했고,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차르스코예셀로 리체이·미하일롭스코예 등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과 연관된 장소를 소재로 한 구리 장식패널을 설치했다. 대형 조명 역시 개별적으로 디자인됐다.
즉 이전의 합리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합리화된 기술적 기반 위에 개별 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다시 선명하게 올린 셈이다.
이 점에서 후기 소련의 지하철을 ‘1950년대의 화려함으로 돌아갔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구조와 건설방식에서는 산업화된 경험이 계속됐고, 그 위에서 역별 주제와 표현이 다양해졌다.
1990년대 — 체제는 바뀌었지만 지하는 하루아침에 끊어지지 않았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됐지만 지하철 건축에서 그해를 완전한 단절선으로 긋기는 어렵다.대형 교통시설은 계획부터 완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소련 말기에 시작한 사업이 러시아연방 출범 뒤에도 이어졌고, 1990년대의 재정제약 속에서도 일부 노선과 역이 완공됐다. 동시에 기존 소련기의 국가서사와 다른 주제와 국제협업도 나타났다.

1995년 12월 28일 개통한 림스카야가 좋은 사례다. 러시아연방 유네스코위원회 자료는 림스카야 건설에 이탈리아 건축가 잠파올로 임브리기(Giampaolo Imbrighi)와 안드레아 콰트로키(Andrea Quattrocchi)가 참여했다고 기록한다. 역의 주제 역시 이름 그대로 ‘로마’다. 로마의 건축과 상징을 활용하고,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포함한 조형물을 배치했다.
이 사례 하나로 1990년대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다만 콤소몰스카야의 국가 역사서사, 푸시킨스카야의 러시아 문학 주제와 비교하면 지하철 공간에서 선택할 수 있는 주제와 협업의 폭이 달라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포스트소비에트 지하철은 ‘옛 양식이 끝나고 새 양식이 시작됐다’기보다 기존 프로젝트의 연속성과 새로운 표현이 겹친 이행기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2010년대 이후 — 역 하나에서 도시 전체의 연결망으로
오늘날에도 모스크바는 개성 있는 지하철역을 계속 짓고 있다. 그러나 현대 지하철의 변화를 건축양식만으로 설명하면 중요한 부분이 빠진다. 2010년대 이후에는 기존 방사형 노선과 새로운 순환축, 광역철도를 하나의 이동체계로 묶는 작업이 크게 확대됐다.
2016년 여객운행을 시작한 모스크바 중앙순환선(MCC)은 기존 지하철을 보완하는 또 하나의 순환축이 됐다. 뒤이어 모스크바 중앙직경선(MCD)이 단계적으로 들어서면서 지하철·MCC·MCD는 통합 요금과 환승 규칙 아래 연결됐다. 무료 환승은 결제수단과 환승시간 등 정해진 조건을 충족할 때 적용된다.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대환상선(BKL)이다. 2023년 3월 1일 전 구간 운행을 시작한 BKL은 70km에 31개 역을 갖췄다. 기존 노선들이 도심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 구조에서 외곽의 여러 노선을 서로 연결하는 두 번째 큰 고리를 만든 것이다.
그 다음 변화는 ‘16번째 노선’에서 이어졌다. 트로이츠카야선은 2024년 9월 7일 노바토르스카야·우니베르시테트 드루즈비 나로도프·게네랄라 튤레네바·튜체프스카야 4개 역으로 첫 구간을 열었다. 같은 해 12월 28일 코르닐롭스카야·콤무나르카·노보모스콥스카야 3개 역이 더해졌고, 2025년 9월 13일 바빌롭스카야·아카데미체스카야·크림스카야·ZIL 4개 역이 개통하면서 1단계는 11개 역, 25km 이상으로 완성됐다.
2026년에는 단순한 신설을 넘어 기존 구간을 새 노선으로 재편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9월 5일 모스크바 지하철의 17번째 노선인 루블료보-아르한겔스카야선의 첫 구간이 개통했다. 첫 구간은 8.7km, 5개 역이다. 다만 이 5개 역을 모두 ‘신설역’으로 부르면 정확하지 않다. 델로보이 첸트르와 셸레피하는 2018년 BKL의 첫 구간 일부로 먼저 문을 열어 운행했고, 2024년 6월 22일부터 새 노선 통합공사를 위해 폐쇄됐다. 2026년에는 두 역이 루블료보-아르한겔스카야선에 편입돼 다시 문을 열었다. 여기에 즈베니고로드스카야·나로드노예 오폴체니예·불바르 게네랄라 카르비셰바 3개 역이 더해져 첫 구간이 구성됐다.
이는 현대 모스크바의 지하철 건설이 ‘새 역을 더하는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기존 BKL 지선을 떼어내 독립 방사형 노선의 일부로 다시 연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지하철 안에 여러 시대가 남아 있다
모스크바 지하철을 흔히 ‘아름다운 지하철’이라고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90여 년의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1935년 크로포트킨스카야에는 새로운 수도와 대중교통을 동시에 만들려던 시대가 남아 있다. 노보쿠즈네츠카야에서는 전쟁이 도시 인프라의 기능과 건설방식을 어떻게 바꿨는지 볼 수 있다. 콤소몰스카야는 전후의 기념비적 역사서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1960년대 모자이크 개작을 통해 다음 시대가 이전 시대를 수정한 흔적도 품고 있다. 페르보마이스카야는 경제성과 표준화를 앞세운 다른 종류의 현대화를 보여준다.
푸시킨스카야에는 합리화된 건설기술과 문화적 주제가 함께 있고, 림스카야에서는 포스트소비에트 이행기의 새로운 표현과 국제협업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BKL과 MCC·MCD, 트로이츠카야선과 루블료보-아르한겔스카야선은 개별 역보다 더 큰 차원의 연결망을 만들고 있다.
이 글에서 택한 해석은 모스크바 지하철의 변화를 ‘화려함에서 실용성으로’라는 한 방향의 역사로 보지 않는 것이다.
도시교통, 상징적 공공건축, 전시 생존공간, 국가적 기념비, 표준화된 대량교통 인프라, 다시 장소성을 가진 공공공간, 광역 환승망이라는 여러 역할이 시대마다 앞뒤를 바꾸며 쌓였다. 새로운 기능이 이전 기능을 완전히 지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늘 모스크바에서 지하철을 타는 일은 한 도시의 서로 다른 시대를 차례로 통과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상에서는 사라진 시대의 건축과 기억이 지하에서는 여전히 일상적인 이동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