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국-중앙아 경제협력의 두 모델: 카자흐스탄은 대형 프로젝트, 우즈베키스탄은 제조·AI

유라시아뉴스 편집국 2026. 9. 22. 22:35

-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경제협력은 단순 교역을 넘어 현지 산업 고도화로 확대 중

 

- 카자흐스탄에서는 가스·정유·발전·핵심광물 등 대형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현지 가공·제조를 키우는 방식이 두드러져

 

-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기존 제조·인프라 협력에 AI·반도체·로봇·바이오를 결합하는 방향이 부각

 

- 다만 실제 성과는 향후 투자·착공·상업생산·현지조달·기술이전으로 이어지는지를 통해 확인해야

 

 

같은 산업고도화 목표, 다른 출발점과 정책수단

 

첫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전후해 한국과 역내 주요 경제협력 상대인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서 대규모 사업과 새로운 산업협력 구상이 잇따라 발표됐다. 두 나라가 원하는 방향에는 공통점이 있다. 중앙아시아의 자원과 한국의 기술·자본을 결합하되 원료를 그대로 수출하는 데 머물지 않고 현지 가공과 제조, 기술축적으로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한국 산업통상부도 이번 협력의 방향을 단순 원자재 수입에서 벗어나 현지 정·제련, 고부가가치 가공, 완제품 생산까지 연결되는 가치사슬 구축으로 설명했다. 우즈베키스탄과는 핵심광물 전주기 협력과 제조 인공지능 전환, 이른바 제조 AX를 별도 협력 의제로 설정했다.

 

다만 같은 목표에 접근하는 출발점과 정책수단은 서로 달랐다. 이번 정상외교에서는 카자흐스탄에서 가스·정유·발전·핵심광물 등 대규모 자본투자가 필요한 프로젝트가 상대적으로 전면에 나섰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이미 축적된 제조업·교통·인프라 협력 위에 AI와 반도체, 로봇, 바이오 같은 산업을 추가하려는 구상이 두드러졌다.

 

 

카자흐스탄, 190억 달러보다 중요한 대형 프로젝트의 구성

 

카자흐스탄 측이 이번 방한에서 가장 크게 내세운 숫자는 약 190억 달러(한화 약 26조2,390억 원)이다. 국부펀드 삼룩카즈나는 한·카자흐 비즈니스협의회를 계기로 약 80건의 상업협정이 체결됐으며 총 규모가 약 190억 달러라고 밝혔다. 카슴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도 한-중앙아 비즈니스 서밋 연설에서 같은 규모를 제시하면서 카자흐 정부가 관련 사업의 적기 이행을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 금액을 ‘한국이 카자흐스탄에 190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여러 형태의 상업협정과 사업을 합산한 발표액이며, 전체가 이미 투자·집행된 자금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업의 구성은 카자흐스탄이 한국과의 협력을 어디로 연결하려는지를 더 잘 보여준다. 삼룩카즈나가 공개한 사업에는 카라차가낙 원료를 이용하는 연간 50억㎥ 규모 가스처리공장, 파블로다르 정유공장 확장, 투르키스탄 1,000MW 복합화력발전소가 포함됐다. 한국 산업통상부 역시 가스처리 플랜트와 파블로다르 정유공장 확장 사업을 양국의 주요 협력사업으로 제시했다.

 

핵심광물 분야에서는 타우켄삼룩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바켄노예 리튬광상 공동 시추를 추진하고, 타우켄삼룩과 포스코홀딩스가 희토류의 가공·분리·정제 기술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이 구성만 놓고 보면 카자흐스탄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광물 판매보다 넓다. 자원과 대형 에너지 프로젝트를 출발점으로 한국의 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이고, 가공과 제조 단계까지 국내에 남기려는 방향이 나타난다.

 

양국 정부가 2009년 수립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17년 만에 ‘미래지향적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협력 의제를 기존 교역·투자에서 에너지·핵심광물, AI·과학기술로 확대하기로 한 것도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2009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은 당시 외교부 자료와 이후 외교부 정책협의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카자흐 현지 매체, ‘190억 달러’와 동시에 이행에 집중

 

카자흐스탄 현지 언론은 토카예프 대통령의 방한을 큰 외교·경제 이벤트로 다뤘다. 국영통신 카즈인포름(Kazinform)은 9월 20일 주간 결산에서 한국 국빈방문을 그 주의 가장 중요한 정치 이벤트로 꼽았다. 기사에서는 한·카자흐 경제협력의 논리를 ‘자원-기술-산업’이라는 공식으로 설명했다. 카자흐스탄이 자원 기반과 시장 접근성을 제공하고 한국이 기술과 산업 경험을 결합해 고부가가치 가치사슬로 연결한다는 구도였다.

 

하지만 현지 보도가 계약액만 낙관적으로 반복한 것은 아니다. 텡그리뉴스(Tengrinews)는 토카예프 대통령이 약 190억 달러의 협정을 두고 “빈 종이가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이라는 취지로 강조한 발언을 전면에 배치했다. 동시에 대통령이 정부에 관련 사업의 이행을 점검하겠다고 밝힌 점도 함께 전했다. 큰 계약액을 발표한 당사자 스스로 실행을 별도의 과제로 제시한 셈이다.

 

카즈인포름(Kazinform)이 별도로 취재한 현지 전문가들도 비슷한 조건을 달았다. 정치학자 세릭 벨기바예프는 성과를 체결된 문건 수보다 실제 산업적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카라간다 국립연구대의 올자스 테미르쿨로프는 광석 수출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기술이전과 국내 심층가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평가는 현지 세평으로 참고할 수 있지만, 이번 기사에서는 장기간 연구경력이 확인되는 주력 전문가와 구분해 사용한다.

 

카자흐스탄 대통령 산하 전략연구소의 사나트 쿠슈쿰바예프는 더 구체적인 검증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1996년부터 연구·교육 현장에서 활동했고 2007년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국제정치 연구자다. 쿠슈쿰바예프는 정상회의 직전 이번 협력의 실제 시험대가 핵심광물과 에너지, 디지털, 교통 분야에서 실행 가능한 의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자흐스탄에는 더 큰 산업 프로젝트와 연구시설, 현지 공급업체망이 필요하며, 가장 어려운 단계는 조립과 양해각서에서 실제 현지화와 상업생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봤다.

 

카자흐스탄 모델을 평가하려면 결국 190억 달러라는 서명액보다 그 이후를 봐야 한다. 사업별 금융조달과 투자 결정, 공장 건설, 상업생산이 이어지는지, 그리고 생산 과정에서 현지 가공·조달·기술축적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우즈베키스탄, 기존 인프라 협력 위에 제조 AX를 얹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나타난 협력 방향은 출발점이 조금 달랐다. 한·우즈벡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기존 고속철과 공항 등 교통·물류 인프라 협력을 계속 확대하면서 핵심광물과 AI·디지털 전환을 새로운 협력 분야로 키우기로 했다. 한국 측은 한-우즈벡 희소금속센터를 기반으로 탐사·개발·가공 전 주기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제조 인공지능 전환 협력 MOU를 토대로 제조업의 AI 전환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실이 공개한 비즈니스포럼 의제는 그보다 더 넓다.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산업협력과 완결된 생산사슬, 에너지·녹색경제, 교통·현대 인프라와 함께 디지털화·AI, 반도체·마이크로전자, 로봇·자동화, 바이오·제약을 새로운 협력 분야로 제시했다. 한국 기업에는 구리가공과 전기장비, 자동차·전기차 부품 현지화, 로봇과 자동화, 에너지저장장치 등에서도 협력을 요청했다. 따라서 우즈베키스탄도 핵심광물과 대형 인프라를 중요하게 다룬다. 다만 이번 정상외교에서는 광물 자체보다 이를 제조업·정책금융·AI·인력양성과 연결하는 산업 플랫폼 구상이 상대적으로 더 넓게 제시됐다.

 

현지 경제매체 Spot의 보도 방식도 이런 특징을 보여준다. Spot은 전체 투자 프로젝트 규모를 다룬 기사와 제조업 AI 도입, 고속철과 바이오 등 개별 협력 문서를 설명하는 기사를 따로 냈다. 정부의 큰 숫자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 분야별로 쪼개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실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약 120억 달러(한화 약 16조5,720억 원) 규모의 유망 프로젝트가 준비됐다고 밝혔다. 이 숫자는 확정된 한국 투자액이나 이미 체결된 계약 총액으로 봐서는 안 된다.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실의 표현은 ‘준비된 유망 프로젝트’다. Spot도 같은 수치를 투자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로 전달했다.

 

별도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실은 한국수출입은행과 약 80억 달러(한화 약 11조480억 원) 규모의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고속철 공급, 바이오센터, 핵심광물 가공, 디지털기술 등이 논의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이 80억 달러 프로그램의 행정적 단계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실의 발표 문구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9월 14일 자료는 프로그램이 채택됐다고 표현했고, 15일 자료는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프로그램 서명을 지지했다고 적었다. 따라서 현재 공개자료만으로는 프로그램 전체가 어떤 법적 단계까지 완료됐는지를 단정하기 어렵다.

 

또 120억 달러의 프로젝트 포트폴리오와 80억 달러의 금융 프로그램이 서로 완전히 별개의 사업인지, 일부 사업을 공유하는지도 공개자료로 확인되지 않는다. 두 금액을 합쳐 ‘200억 달러 협력’이라고 계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중앙아 현지 매체와 전문가들, 한국과의 협력을 원료 공급보다 자국 산업 고도화에 무게

 

중앙아시아 경제매체 Kursiv는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이해관계를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했다. 한국에는 핵심광물과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하지만 중앙아시아가 원하는 것은 자원을 캐서 보내는 데 그치지 않는 투자라는 것이다. 매체는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더 중요한 자산으로 기술과 금융을 꼽고, 이를 이용해 자원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구조를 강조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자블론 바하보프도 비슷한 방향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설명했다. 그는 서울에서 열린 전문가 회의에서 중앙아시아의 대외협력을 강대국 경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에는 투자와 기술을 끌어들이고 시장과 교통망을 다변화하며 인적자본을 확충하는 ‘전략적 선택지의 확대’가 더 직접적인 목표라는 설명이다. 더 나아가 그는핵심광물에서도 탐사와 채굴에서 끝나는 방식보다 지질정보의 디지털화, 가공, 인증, 한국 산업기업과의 장기 공급계약까지 전 주기를 묶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바하보프는 동시에 현재 경제관계의 규모를 과장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25년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의 교역이 처음 100억 달러를 넘었지만 한국 전체 대외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1% 미만이다. 첫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대형 프로젝트들이 실제 경제구조를 바꾸려면 상당한 후속 집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만 그의 발언은 독립 전문가 논평으로 보기보다 우즈베키스탄 정부 측의 정책 해석으로 읽어야 한다. 바하보프는 2001년 외교부에서 경력을 시작해 국가안보회의, 전략연구기관, 외교차관·제1외교차관, 미국·캐나다·브라질 대사를 거쳤고, 2025년부터 대통령 외교정책 부보좌관을 겸하면서 국제중앙아시아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대형 프로젝트, 우즈베키스탄은 산업 플랫폼

두 나라를 다시 나란히 놓으면 이번 정상외교에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진 차이를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은 석유·가스와 광물, 대규모 산업 프로젝트라는 기존 강점에서 출발했다. 가스처리와 석유화학, 발전소, 리튬·희토류처럼 개별 사업의 자본집약도가 높다. 여기에 한국의 플랜트·광물가공 기술과 자본을 연결해 원료 수출에서 현지 심층가공과 제조로 올라가려 한다.

 

우즈베키스탄은 기존 제조업과 한국 기업 네트워크, 철도·공항·의료 등 축적된 인프라 협력을 기반으로 한다. 이번에는 여기에 제조 AX와 AI·디지털, 반도체, 로봇, 바이오, 정책금융을 추가해 보다 넓은 산업생태계를 만들려는 구상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 구분을 두 나라의 고정된 경제모델로 읽어서는 안 된다. 카자흐스탄도 AI와 제조업, 스마트시티를 추진하고 있고 우즈베키스탄도 핵심광물과 철도, 대형 인프라를 중시한다. 두 나라 모두 최종적으로는 국내 가공과 제조업 고도화, 기술축적을 원한다. 차이는 목표보다 이번 정상외교에서 확인된 출발점과 정책수단의 조합에 있다.

 

 

평가 기준은 ‘서명 다음 단계’

 

첫 한-중앙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발표된 금액은 크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약 190억 달러 규모의 상업협정이 발표됐고,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실은 약 120억 달러 규모의 유망 프로젝트와 80억 달러 규모의 한국수출입은행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숫자만으로 두 경제협력 모델의 성과를 비교할 수는 없다. 각 금액의 성격과 사업 단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향후 확인해야 할 지표는 더 구체적이다. 상업협정이 실제 투자 결정과 금융조달로 이어지는가. 프로젝트가 착공되는지, 공장이 상업생산에 들어가는지, 핵심광물이 현지에서 어느 단계까지 가공되는지, 중앙아시아 기업과 노동자는 공급망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맡는지, 기술과 인력이 현지에 얼마나 축적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한국과 중앙아시아 정부 측도 이러한 취지의 발표를 한 바 있다. 한국 산업통상부도 정상회의에서 나온 협력 문서와 비즈니스 MOU가 실제 계약과 투자로 이어지는지를 실무협의체를 통해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토카예프 대통령 역시 약 190억 달러 협정의 적기 이행을 정부가 확인하겠다고 언급했다.. 결국 이번 경제외교의 실제 성과는 발표된 금액 자체보다 서명 → 투자 → 건설 → 상업생산 → 현지화·기술축적의 과정이 얼마나 작동하는지를 통해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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