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르기스스탄은 안보기구·개발은행, 카자흐스탄은 물류·수자원·금융, 우즈베키스탄은 산업·AI·철도, 타지키스탄은 마약·농업·환경을 앞세워
- 최종 합의에서는 기존 안보체계와 AI·물류·환경처럼 회원국 이해가 겹치는 분야가 규정·로드맵·협력문서로 구체화
- 개발은행·수자원 분석센터·철도망 통합기구·경제성장구역처럼 새 자금과 권한이 필요한 제안은 상당수가 후속과제로 남아
- 중앙아 4국은 SCO 안에서 각자의 국내 정책을 다자 의제로 전환했지만, 실제 제도화 수준은 국가와 분야에 따라 크게 달라
상하이협력기구 창설 25주년을 맞아 열린 제26차 SCO 회원국 정상회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조직을 서로 다르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정상회의 개최국이자 의장국인 키르기스스탄은 SCO의 제도와 기관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고, 카자흐스탄은 물류·수자원·금융을 SCO 차원의 장기 의제로 끌어올리려 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산업·기술·교통을 묶은 장기 개발 구상을 제시했고, 타지키스탄은 기존 안보·마약 대응에 경제·농업·환경 의제를 추가했다.
키르기스스탄, 의장국 성과는 개발은행보다 안보제도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SCO가 블록 대결과 진영논리를 벗어나 신뢰와 안정의 플랫폼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장국인 키르기스스탄은 연초부터 장기 안정, 경제협력, 교통 인프라, 디지털화를 주요 우선순위로 설정했으며, 특히 SCO 개발은행·개발기금·투자기금 등 새로운 금융수단의 조성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정상회의에서 키르기스스탄이 얻은 가장 분명한 성과는 금융이 아니라 안보였다. SCO 회원국 안보위협 대응 범용센터와 마약대응센터 집행위원회의 운영규정이 승인됐고, 키르기스 정부는 비슈케크에 초국가조직범죄 대응 기능이 자리 잡는 점을 의장국 성과로 평가했다. 재난 피해국 지원에 관한 정상 공동성명도 키르기스스탄이 의장국 기간 추진했던 재난대응 협력과 맞닿아 있다.
반면 SCO 개발은행은 이번에도 출범하지 않았다. 5월 비슈케크에서 열린 개발은행 제3차 협의까지 임시사무국과 3년 로드맵이 마련됐지만 자본금과 지배구조, 본부 소재지 등 핵심 설계는 합의되지 않은 상태였다. 키르기스스탄은 은행 본부를 비슈케크에 두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지만 정상회의에서 본부 위치가 결정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키르기스스탄의 성과는 개발은행 유치 성공 여부보다 SCO 안보체계의 일부 기능을 비슈케크에 배치하고 의장국 기간 기관 개편을 진전시킨 데서 찾는 편이 정확하다.
카자흐스탄, SCO를 물류·물·금융 플랫폼으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4개국 가운데 가장 많은 신규 제도와 기관을 제안했다. 전략안정과 신뢰구축을 다루는 SCO 장관급 회의, 초국경 무역구역, SCO 개발은행, 교통·디지털 연결 강화, 수자원 문제 분석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카자흐스탄이 이런 의제를 제시한 배경에는 국내정책과 대외전략이 함께 있다.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유럽을 잇는 유라시아 육상 물류의 핵심 경유국이고, 물 부족은 농업과 산업, 지역 간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가안보 문제로 다뤄져 왔다. 토카예프 정부가 국내에서도 수자원 관리의 디지털화와 과학적 관리체계 구축을 추진해온 만큼 SCO 수자원센터 제안도 일회성 외교 구상보다는 국내 정책의 다자화로 볼 여지가 있다.
최종 합의에는 카자흐스탄이 제안한 방향과 겹치는 내용이 일부 포함됐지만, 이를 카자흐스탄 제안의 직접 채택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2026~2030년 항만·물류센터 개발 로드맵과 AI·디지털, 환경·기후 관련 공동문서는 채택됐지만 카자흐스탄이 제안한 수자원 분석센터, 초국경 무역구역, 신규 전략안정 장관회의는 별도 제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개발은행 역시 계속 협의 대상으로 남았다.
카자흐 외교부 산하 외교정책연구소의 마나르베크 카바지예프 부의장은 SCO를 회원국의 정치·경제제도를 통일하는 조직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국가의 연결성을 높이는 형태의 통합으로 설명했다. 이는 이번 결과와도 맞닿는다. 물류·디지털처럼 공동사업으로 묶기 쉬운 분야에서는 진전이 있었지만 새로운 상설기관과 경제제도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한 모습이 나타났다.
우즈베키스탄, ‘SCO-2040’으로 장기 산업·기술 연결 구상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네 나라 가운데 가장 체계적인 장기 경제·산업 구상을 제시했다. 핵심은 ‘SCO-2040: 공동발전 공간’이다. 투자와 기술, 지식이 이동하고 대형 산업·인프라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장기적인 공동 발전공간을 조성하자는 구상이다.
미르지요예프는 이를 위한 세부수단으로 SCO 산업협력 지도, 개발은행의 실질적 출범, 다국어 공개 데이터 코퍼스, AI·디지털솔루션 포럼, 식량·물·에너지 안보 협력, 철도망통합위원회 등을 제안했다. 2022년 사마르칸트 정상회의에서 SCO 발전전략 2040을 제안한 데 이어 이번에는 산업·투자·기술과 물류를 보다 구체적으로 묶은 셈이다.
비슈케크 최종 합의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세부 제안들이 그대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SCO-2040 공동발전 공간, 산업협력 지도, 철도망통합위원회, 별도 물·에너지·식량 조정기구는 이번 28개 문서에 독립된 제도로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AI와 디지털 분야에서는 미르지요예프의 방향과 공동합의 사이의 정합성이 높았다. 회원국 정부 간 AI 협력 MOU와 데이터센터·컴퓨팅 역량·AI산업 발전 관련 개념이 채택됐다. 이를 우즈베키스탄의 단독 제안이 그대로 채택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타슈켄트가 강조한 산업·디지털 협력이 SCO 공동의제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점은 확인된다.
우즈베키스탄과 직접 연결되는 기존 제도화 성과도 있다. SCO 안보위협 대응 범용센터의 운영규정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승인됐고,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타슈켄트 소재 센터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번 연설에서 처음 제안된 사업은 아니지만 우즈베키스탄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아프가니스탄·테러·초국경 안보 문제의 제도화라는 의미를 갖는다.
우즈베키스탄 국내에서는 대통령 산하 전략·지역 연구기관들이 이번 제안을 SCO의 경제·기술 협력을 실질화하려는 구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관은 정부정책과 가까운 만큼 독립적인 국내 학계 평가와 동일하게 취급하기는 어렵다. 이번 정상회의 직후 공개된 독립 우즈베키스탄 전문가의 심층 사후평가는 아직 제한적이다.
타지키스탄, 마약대응에서는 기관을 얻고 경제제안은 다음 단계로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은 SCO 안보위협 대응센터와 마약대응센터의 조속한 가동을 요구하는 동시에 경제성장구역과 지역 디지털 농업·환경 플랫폼을 제안했다. 디지털경제와 AI, 전통에너지와 녹색전환, 빙하와 수자원 문제도 주요 의제로 제시했다.
타지키스탄이 가장 분명한 성과를 얻은 분야는 마약 대응이다. 두샨베에 두는 SCO 마약대응센터 집행위원회의 운영규정이 정상회의에서 승인됐고, 2030년까지 마약중독과 합성마약·전구체 확산에 대응하는 공동 프로그램도 채택됐다.
아프가니스탄과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타지키스탄에는 마약과 무장세력, 국경안보가 직접적인 국가안보 문제다. 따라서 마약대응 기능이 두샨베에 제도화되는 것은 단순한 국제기구 유치 이상의 정책적 의미가 있다.
반면 라흐몬이 새로 제안한 SCO 경제성장구역과 Regional Digital Agro-Ecological Platform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별도 제도로 채택되지 않았다. 환경·생물다양성·녹색기술 관련 공동계획은 채택됐지만 이를 타지키스탄의 해당 제안이 직접 반영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타지키스탄의 경우 정상회의 직후 공개된 독립 국내 전문가 평가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대통령실과 국영·지역 매체를 통해 정책의도와 결과는 확인할 수 있지만, 정부 입장과 거리를 둔 국내 학계의 사후 평가는 추가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태다.
SCO 기관을 자국으로… 중앙아시아 안에서도 유치 경쟁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SCO의 공동의제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 상설기관과 향후 금융기구를 자국에 두려는 움직임도 확인됐다.
안보 분야에서는 타슈켄트에 범용안보센터, 두샨베에 마약대응센터 집행위원회, 비슈케크에 초국가조직범죄 대응 기능이 배치되는 방향이 구체화됐다. 이와 별도로 키르기스스탄은 SCO 개발은행 본부의 비슈케크 유치를 공식 제안했고, 카자흐스탄 역시 개발은행 본부 유치 의사를 밝혔다.
다만 이를 중앙아시아 4국 전체의 전면적인 기관 유치 경쟁이나 SCO 중심의 중앙아시아 이동으로 확대해석하기는 이르다. 개발은행 자체가 아직 설립되지 않았고 SCO 사무국은 여전히 베이징에 있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중앙아 국가들이 조직 안에서 자신들의 기능적 역할과 기관 소재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이전보다 구체화되고 있다는 정도다.
SCO의 효율성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중앙아시아 연구자들은 SCO를 강한 통합기구라기보다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국가들이 계속 대화할 수 있게 하는 장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키르기스 정치학자 에밀벡 조로예프는 회원국 간 견해차가 있어도 불편한 대화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을 SCO의 주요 기능으로 봤다. 카자흐-독일대의 루스탐 부르나셰프 교수도 SCO를 중앙아시아·남아시아·동아시아를 잇는 지역 간 대화의 '우산'으로 설명하면서, 이 조직을 이념적 또는 반서방 블록으로 규정하는 데 선을 그었다.
이 관점은 중앙아 4국의 제안을 평가할 때도 중요하다. 새로운 은행이나 위원회가 모두 채택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SCO 안에서의 외교적 효용이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반대로 공동선언에 유사한 의제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국가가 조직 전체의 정책을 주도했다고 평가하는 것도 과도하다.
SCO만이 중앙아시아 경제협력의 무대는 아니다
중앙아 국가들이 SCO에서 경제·물류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실질 경제협력은 별도의 '중국–중앙아시아' 메커니즘과도 병행된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2025년 중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의 상품교역액은 1,063억 달러로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기반으로 별도 무역·투자 협력체계도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중앙아 국가들의 SCO 제안은 유라시아 다자외교의 중요한 한 층이지만, 이들 국가의 전체 대외경제전략을 SCO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네 나라의 제안은 달랐지만, 채택되는 의제에는 공통점
네 나라의 제안을 비교하면 SCO 안에서 무엇이 비교적 쉽게 공동합의로 바뀌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도 드러난다.
안보센터와 마약대응센터처럼 기존 SCO 협력체계를 발전시키는 기관, AI·디지털, 물류, 환경처럼 회원국들이 공동의 이익을 찾기 쉬운 분야에서는 규정과 다년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반면 개발은행, 초국경 무역구역, 수자원분석센터, 철도망통합위원회, 경제성장구역처럼 새로운 재원과 조직, 권한배분이 필요한 제안은 대부분 이번 정상회의에서 최종 제도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점에서 중앙아 4개국은 같은 SCO를 서로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국제기구와 금융기구 유치 및 의장국 제도화를, 카자흐스탄은 물류·수자원·금융 거버넌스를, 우즈베키스탄은 산업·기술·교통의 장기 연결을, 타지키스탄은 안보·마약과 농업·환경을 각각 우선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의를 중앙아시아가 중국과 러시아의 의제를 단순히 수용한 회의로만 보는 것은 실제 제안의 다양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중앙아 국가들은 SCO 안에서 각자의 국내 문제와 발전전략을 다자 의제로 전환하려 했다. 다만 어떤 제안이 실제 공동제도로 자리 잡는지는 회원국들이 자금과 권한을 얼마나 공유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기존 SCO의 협력영역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다.
출처
- 상하이협력기구 사무국 — 제26차 SCO 정상회의 공식 결과, 2026년 9월 1일
https://eng.sectsco.org/20260901/2493609.html - 상하이협력기구 사무국 — 비슈케크 25주년 선언 전문, 2026년 9월 1일
https://rus.sectsco.org/20260901/2495418.html - 상하이협력기구 사무국 — SCO 개발은행 제3차 협의회의, 2026년 5월 28일
https://eng.sectsco.org/20260529/2335857.html -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실 —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SCO 정상회의 연설, 2026년 9월 1일
https://president.uz/en/lists/view/9567 - 키르기스스탄 국영 Kabar — SCO 정상회의 28개 채택·서명 문서 목록, 2026년 9월 1일
https://en.kabar.kg/news/sco-summit-list-of-signed-documents/ - 키르기스스탄 국영 Kabar — 키르기스 외무장관의 의장국 결과 브리핑, 2026년 9월 1일
https://en.kabar.kg/news/kyrgyz-fm-sums-up-the-results-of-kyrgyzstans-sco-chairmanship/ - 키르기스스탄 국영 Kabar — 2026년 SCO 의장국 전략 우선순위, 2026년 1월 15일
https://en.kabar.kg/news/sco-summit-kyrgyzstan-outlines-strategic-priorities-for-2026/ - The Astana Times — 토카예프의 정상회의 제안 및 전문가 평가, 2026년 9월 1일
https://astanatimes.com/2026/09/tokayev-calls-for-stronger-sco-cooperation-as-experts-see-sco-emerging-as-key-multipolar-platform/ - Asia-Plus — 에모말리 라흐몬 정상회의 제안, 2026년 9월 1일
https://asiaplus.news/en/2026/09/01/rahmon-proposed-creating-economic-growth-zones-and-digital-agricultural-platform-in-sco/ - The Times of Central Asia — 비슈케크 정상회의 제도개혁 및 개발은행 분석, 2026년 9월 1일
https://timesca.com/sco-summit-delivers-institutional-reform-but-leaves-development-bank-unsettled/ - Новая газета Европа — SCO 정상회의 분석 및 중앙아 전문가 인터뷰, 2026년 9월 1일
https://novayagazeta.eu/articles/2026/09/01/prezidenty-i-kochevniki - 중국 상무부 — 2025년 중국–중앙아시아 상품교역 현황, 2026년 1월 18일
https://www.mofcom.gov.cn/syxwfb/art/2026/art_dbd86367739f4f83a048c563ed26537f.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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