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선사의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약 50일간 북극항로 왕복 시범운항을 마치면서 새로운 한·유럽 물류노선의 가능성을 시험
- 이번 항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경색된 한·러 관계에서도 한국이 대러 제재 원칙을 유지하면서 북극항로 이용 경험을 축적한다는 국제정치적 의미가 있어
- 그러나 귀항편의 유상 화물 확보 실패, 높은 운항비용, 보험·금융 제약은 정기 상업운항의 장애물로 남아 있아
- 북극항로의 장래는 한국 기업의 물류사업 기회뿐 아니라 러시아의 항로 관리권, 국제법상 항행의 자유, 기후변화와 북극 질서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아
팬스타 아크로호가 시험한 세 가지 과제… 한·러 관계, 양방향 물류사업, 북극 질서의 변화
10월 11일 부산항으로 돌아온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는 한 척의 배가 어디까지 항해할 수 있는지를 넘어선 질문을 남겼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제재를 유지하는 한국이 러시아 연안의 항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한국과 러시아의 기업은 이 바닷길에서 어떤 사업을 할 수 있는가. 북극의 교통로가 늘어나면 국제질서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팬스타 아크로호는 8월 22일 부산에서 출발해 북극해를 거쳐 유럽에 도착한 뒤, 10월 11일 약 50일간의 왕복 시범운항을 마쳤다. 한국 선사의 컨테이너선이 러시아 연안의 북동항로를 이용해 한국과 유럽을 왕복한 첫 사례다. 그러나 운항을 완료했다는 사실만으로 정기노선의 수익성이나 한·러 경제협력의 재개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한국, 2013년 북극항로 첫 도전... 2022년 이후 달라진 국제환경
북동항로는 베링해협에서 러시아 북쪽 해안을 따라 유럽으로 이어지는 북극해의 바닷길이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갈 때 인도양과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남쪽 항로 대신 북쪽으로 돌아갈 수 있다. 북극해 얼음이 줄어들면서 여름철 통항 가능성이 커졌지만, 겨울에도 정기적으로 운항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날씨와 해빙 상태, 쇄빙 지원, 구조시설, 운항 허가에 영향을 받는다.
한국의 북극항로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해양수산부의 2013년 10월 자료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는 스테나해운에서 빌린 유조선에 러시아 우스트루가항의 나프타 4만 4,000톤을 싣고 북극항로를 거쳐 광양항까지 운송했다. 당시 예상보다 항해가 길어진 이유 중 하나는 악천후와 러시아 쇄빙선 대기였다. 2026년 운항의 새로운 점은 유조선이나 프로젝트 화물이 아니라 실제 수출 컨테이너를 실은 한국 선사의 선박이 유럽을 왕복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한국 외교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2월 28일 대러 수출통제를 강화하고 러시아 은행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배제에 동참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기업이 러시아와 북극해에서 접촉한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제재를 위반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금융·보험·기술·항만 서비스 등 각 거래가 적용 규정을 충족하는지는 별도로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의 북극항로 정책도 이러한 제약을 전제로 마련됐다.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2026년 업무계획은 대러 제재가 해제되면 러시아 연안 북동항로를 통한 컨테이너 및 액화천연가스(LNG) 운송 확대를 추진하고, 제재가 계속되면 캐나다 쪽 북서항로 시범운항도 검토한다는 두 가지 경로를 제시했다. 북극항로 개발이 곧 러시아와의 교역 재개를 뜻하지 않도록 정책을 나눈 것이다.
이번 항해, 한국에서 유럽까지 20일 5시간 소요
팬스타라인닷컴은 정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 한국해운협회가 준비한 시범운항의 선사로 선정됐다. 운항에 투입된 팬스타 아크로호는 20피트 컨테이너 2,758개를 실을 수 있는 규모다. 정부는 선원에게 극지 전문교육을 실시하고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서 근무한 항해사를 승선시켰으며, 항해 중 24시간 연락체계를 유지하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팬스타그룹이 8월 23일 공개한 실제 출항 적재량은 수출화물 737TEU와 빈 컨테이너 202TEU, 총 939TEU다. TEU는 길이 20피트 컨테이너 한 개를 기준으로 화물량을 세는 단위다. 수출화물에는 화학제품·중고차·자동차부품 등이 포함됐다. 정부가 출항 전에 발표한 총 837TEU는 빈 컨테이너 약 100개를 포함한 사전 계획치로, 선사가 출항 뒤 공개한 수치와 같은 시점의 실적이 아니다.
선박은 러시아 북쪽 해역을 통과한 뒤 영국 펠릭스토, 네덜란드 로테르담, 폴란드 그단스크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왔다.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부산~펠릭스토 구간의 소요시간은 20일 5시간이다. 약 50일이라는 수치는 유럽 여러 항만에 기항하고 돌아온 전체 항차를 가리킨다. 두 시간을 같은 구간의 속도 비교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정부 발표에 제시된 구간 시간은 실제 운항비용과 선박위치 원자료를 공개해 제3자가 검산한 결과와도 구별해야 한다.
운항의 상업성에서는 과제가 드러났다. 팬스타는 출항 전 유럽에서 돌아올 때 빈 컨테이너 1,300TEU에 더해 수입화물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아주경제는 10월 12일 강승규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해양수산부 자료를 근거로, 귀항편에 수입화물 없이 빈 컨테이너 1,743TEU만 실렸다고 보도했다.
팬스타는 출항 당시 기존 수에즈운하 항로보다 거리를 약 35%, 시간을 약 10일 줄이고 연료비를 약 30%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전망과 목표치다. 해양수산부의 10월 13일 귀항 발표에는 선박의 실제 운송원가, 보험료, 항차별 손익, 수출입 운임 수익을 종합한 결산이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시범운항을 수익성까지 입증한 상업 정기항로의 개통으로 보기는 어렵다.
막힌 외교의 우회로인가, 새로운 물류질서의 시험대인가
1. 한·러 관계: 제재를 풀지 않고도 항로에 대비할 수 있는가
한국 외교부의 2022년 제재 결정과 해양수산부의 2026년 조건부 항로계획을 함께 놓고 보면, 이번 운항은 전쟁 이전의 한·러 경제협력을 복원한다는 정책 발표가 아니다. 정부가 공개한 것은 제재 체제 안에서 극지 운항 경험을 확보하고 장래의 수송 선택지를 준비하는 계획이다. 북동항로는 러시아 연안을 지나며, 항행 정보와 허가·안전 관련 행정절차에 러시아의 역할이 있다. 그러나 러시아 항만에 기항하거나 러시아 기업과 공동으로 항로를 운영해야만 북극해를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 시범운항도 러시아 항만 기항 없이 계획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13일 부산의 귀항 환영행사에서 국제규범과 대러 제재 원칙을 지키고 주요 협력국과 소통하며 북극항로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러시아와의 사업을 위해 제재를 완화하겠다는 발표가 아니다. 실제 운항 과정의 개별 허가·금융·보험 거래가 어떤 제재 심사를 거쳤는지와도 구분된다.
러시아에서는 다른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중국·현대아시아연구소의 한국연구자 예브게니 김 선임연구원은 9월 러시아 북극 전문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러 제재가 정상적인 한·러 북극사업 협력을 가로막고, 그사이 중국이 러시아의 북극 인프라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러시아 측의 사업 기회와 제재 비용을 강조한 전문가 견해다. 반면 한국 정부는 제재 준수와 수송로 다변화를 함께 추진한다. 같은 항로를 두고 러시아는 협력 확대의 기회를, 한국은 외교적 제약을 관리하면서 확보할 장래의 선택지를 보는 셈이다.
2. 한국·러시아 기업: 항해 경험에서 돈이 되는 사업으로
한국에서 당장 확인되는 사업은 팬스타의 운항 경험 축적과 화주 모집이다. 팬스타는 이번 항해에서 극지 운항과 선박설계 자료를 얻겠다고 밝혔고, 앞서 7월에는 한국해양진흥공사·한국무역협회와 화주 설명회를 열었다. 삼성SDS·현대글로비스·CJ대한통운·LX판토스 등 관련 업체들이 설명회에 참석했다고 팬스타는 발표했다. 참석 사실은 향후 운송계약이나 투자 결정과는 다른 것이다. 후속 사업의 성패는 유럽행뿐 아니라 귀항편 화물, 정시성, 보험과 금융조달, 화주에게 제시할 운임에 달려 있다.
정부가 산업계에 제시한 사업 기회는 더 넓다. 해양수산부는 2026년 업무계획에서 극지 운항용 선박 건조 지원, 항만시설 사용료 감면, 선박금융 지원과 2030년까지의 쇄빙 컨테이너선 기술 개발을 제시했다. 조선사는 빙해 대응 선박을, 항만과 물류기업은 환적·창고·통관 서비스를, 보험과 금융업계는 새로운 위험에 맞춘 상품을 검토할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정부 지원계획의 존재만으로 개별 기업의 신규 수주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측에서는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이 관리하는 북극항로의 운항지원·항행정보·쇄빙 및 물류 기반시설이 관련 사업의 중심에 있다. 로사톰이 공개한 2025년 실적에 따르면 북극항로 국제 통과화물은 320만 톤이었고, 컨테이너 통과 운항은 2024년 14회에서 2025년 24회로 늘었다. 로사톰은 러시아와 중국 간 북극항로 화물을 2030년 2,000만 톤으로 확대하는 로드맵도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 기업이 북극항로를 에너지·물류 사업과 연결해 키우려 한다는 근거이지만, 한국 기업과 로사톰 사이에 새로운 계약이 체결됐다는 근거는 아니다.
사업성을 평가할 때는 거리보다 비용을 봐야 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최혜원·김옥희가 2026년 6월 발표한 연구는 부산~로테르담 구간의 컨테이너 운송을 비교했다. 연구진의 기준 시나리오에서 빙해 운항이 가능한 선박을 이용한 북극항로의 컨테이너당 비용은 수에즈운하 항로보다 약 55% 높게 계산됐다. 이 수치는 팬스타 아크로호의 실측 운임이 아니라 연구의 가정에 따른 비교 결과다. 하지만 연료비가 줄더라도 특수 선박·보험·안전지원·계절 운항 제약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핀란드 투르쿠대의 해운물류 연구자 토미 솔라키비 부교수와 라우리 오얄라 교수 등이 2026년 발표한 기후·물류모형 연구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연구진은 북극항로의 이론적 수송능력보다 실제 운항량이 훨씬 적으며, 그 주된 이유가 단순한 쇄빙 능력 부족만이 아니라 부족한 시간 절약 효과, 경제성, 항해 안전성에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북극항로가 2030년까지 정기화될지는 운항할 수 있는 날의 수뿐 아니라 화주가 계속 돈을 내고 이용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3. 북극 지역의 국제질서: 누가 바닷길을 관리하고, 누가 이용할 것인가
북극항로는 단순한 지름길이 아니다. 해빙이 줄면서 새로 이용할 수 있게 된 바다를 러시아 등 연안국이 어느 범위까지 관리할 것인지, 한국·중국 같은 이용국은 어떤 항행권을 가질 것인지를 둘러싼 국제규범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은 2013년 북극이사회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 같은 해 중국·일본·인도·싱가포르도 옵서버로 참여했다. 중국 정부는 2018년 북극정책 백서에서 북극해 항로 개발을 ‘빙상 실크로드’ 구상과 연결하고, 국제법에 따른 항행의 자유를 강조했다. 러시아는 항로 관리·쇄빙·항만 기반시설을 갖춘 핵심 연안국으로서 통제와 물류사업 확대에 이해관계가 있다. 한국의 이번 운항은 이런 구도가 이미 형성된 뒤 뒤늦게 출발한, 그러나 한국 선사의 독자적인 컨테이너 운항 경험을 확보한 사례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북극협력 체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극이사회는 같은 해 고위급 공식회의를 중단했다. 이후 2024년 여덟 회원국의 합의로 실무 작업반의 화상회의가 단계적으로 재개됐지만 고위급 외교회의는 당시 계속 중단된 상태였다. 안보·제재 갈등이 심해졌어도 환경·과학·항해안전과 같은 공동 과제는 남아 있는 것이다.
국제법의 쟁점도 있다. 한국해양대학교 연구진 김지현·이상일은 2026년 논문에서 유엔해양법협약의 항행권과 결빙해역에 관한 연안국 규제권, 국제해사기구의 기준이 서로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극 선박 안전을 위한 국제해사기구의 ‘극지운항 규칙’이 곧 연안국의 무제한적 통제권을 인정하는 근거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로 얼음이 줄어들수록 항로의 경제적 이용뿐 아니라 항행의 자유와 연안국의 환경규제 사이에서 어디까지 권한을 인정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안전과 환경 문제 역시 별개의 부담이다. 국제해사기구의 극지운항 규칙은 선박 구조·장비·승무원 훈련·수색구조·오염방지 요건을 다룬다. 북극의 바다가 열리는 이유가 기후변화라는 점에서, 신규 물류사업은 항해 효율뿐 아니라 사고 때 구조할 수 있는지와 북극 생태계에 미칠 영향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이번 시범운항 뒤 후속 운항과 상업서비스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 현재 확보된 것은 한 차례의 컨테이너선 왕복 경험과 정부·기업의 향후 계획이다. 더 넓은 한·러 사업협력에는 제재와 거래 상대방 문제가 남아 있고, 정기 물류사업에는 되돌아올 화물과 비용 문제가 남아 있다. 이번 항해가 여는 다음 단계는 실제 운송계약, 항차별 손익, 안전·환경 자료가 공개될 때 더 분명해질 것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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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mo.org/en/ourwork/safety/pages/polar-code.aspx - 김지현·이상일 / 해양정책연구, 「북극항로를 둘러싼 국제규범 체계와 그 한계」, 2026-06-30.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352928 -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 「Госкорпорация «Росатом»: ключевые результаты 2025」, 2026년 공개(2025년 실적).
https://report.rosatom.ru/go/rosatom/go_rosatom_2025/rosatom_2025_key_results_ru.pdf - 로이터, 「South Korea ship to test Arctic commercial route amid Western concerns」, 2026-08-22.
https://www.investing.com/news/world-news/south-korea-ship-to-test-arctic-commercial-route-amid-western-concerns-4872306 - 미하일 코로스티코프 /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International Demand for Russia’s Arctic Shipping Route Is Unlikely to Last」, 2026-09-30.
https://carnegieendowment.org/russia-eurasia/politika/2026/09/russia-northern-sea-route - 북극이사회, 「Arctic Council advances resumption of project-level work」,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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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tic-council.org/about/observers/republic-of-korea/ - 아주경제 이나경, 「[단독] 팬스타 아크로호 결국 빈손 귀항…북극항로 상업성 비상」, 2026-10-12.
https://www.ajunews.com/view/20261011100709260 - 연합뉴스 박보람, 「Lee says Arctic sea route development to comply with int’l sanctions」,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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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of.go.kr/doc/ko/selectDoc.do?bbsSeq=10&docSeq=64262&menuSeq=971 - 해양수산부, 「우리 컨테이너선, 북극항로를 향한 첫 항해에 나선다」, 2026-08-20.
https://www.mof.go.kr/doc/ko/selectDoc.do?bbsSeq=10&docSeq=68103&menuSeq=971 - Arctic.ru·예브게니 김, 「Арктический разворот Сеула: почему Южная Корея выходит на Севморпуть」, 2026-09-11.
https://arctic.ru/20260911/17062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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