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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에 모인 미국·중국·러시아… 아세안 ‘중심성’은 강대국 경쟁을 관리할 수 있나

유라시아뉴스 편집국 2026. 7. 28. 20:10

2026년 7월 2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미국·중국·러시아를 포함한 주요국이 한자리에 모여 인도·태평양과 중동, 남중국해, 미얀마 문제를 논의한 외교 무대가 됐다. 아세안은 이를 ‘아세안 중심성’을 확인하는 회의로 규정했지만, 회원국 간 이해 차이와 강대국 갈등이 커지면서 중심성의 실효성도 시험받고 있다.

 

 

아세안 중심성은 아세안이 군사적·경제적 힘으로 강대국을 통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아세안이 회의 의제를 만들고,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자 틀을 유지하며, 합의 가능한 최소 기준을 제시하는 외교 방식이다. EAS와 ARF는 미국·중국·러시아·일본·한국·인도·호주 등이 모두 참여하는 드문 협의체다. 회원국들은 이 구조를 통해 어느 한 강대국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외교적 선택지를 확보한다.

 

2026년 회의에서는 남중국해와 국제 해상교통로, 중동 사태에 따른 에너지 안보, 미얀마 폭력 중단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아세안 공동문서는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 국제항로의 안전한 통과를 강조했다. 이는 중국을 직접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남중국해에서 규칙 기반 질서를 요구하는 표현이다. 동시에 아세안은 미·중 대립이 역내 공급망과 투자를 훼손하지 않도록 경제 통합과 비관세 장벽 완화를 강조했다.

 

러시아는 다극체제와 비서방 협력을 주장하며 아세안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부각했다. 중국은 아세안과 에너지 협력 및 남중국해 행동규범 협상을 강조했고, 미국은 동맹·파트너십과 국제법 준수를 앞세웠다. 세 강대국 모두 아세안 중심성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각국이 기대하는 중심성의 의미는 다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에 대응하는 포괄적 다자주의를 선호하고, 미국은 아세안이 중국의 해양 행동을 견제하는 규범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아세안의 한계도 분명하다. 의사결정이 합의제이기 때문에 회원국 간 견해가 크게 갈리면 강한 공동 입장을 내기 어렵다. 남중국해 문제에 직접 이해가 걸린 필리핀·베트남과 중국과 긴밀한 캄보디아·라오스의 입장은 동일하지 않다. 미얀마 문제에서도 폭력 중단을 요구하지만 강제수단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아세안 외교의 가치는 결과문서의 강도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경쟁국이 같은 회의에 참석하고 비공식 접촉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긴장 관리 장치다. 2026년 마닐라 회의는 아세안이 강대국 경쟁을 종식시키지는 못해도, 경쟁이 전면적 블록 대결로 굳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외교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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