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6일 안드레이 루덴코(Андрей Руденко) 러시아 외무차관이 이석배 주러시아 한국대사를 만나, 한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재무장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에서 나토가 러시아와의 전쟁 준비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상황에서 한국이 나토의 질적·양적 재무장 과정에 사실상 공범이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발표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 외무부 측은 한국이 나토 쪽으로 점점 기울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국이 나토 동맹과의 군사적·군사기술적 협력 심화를 추진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들이 이를 입증하며 이는 러시아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항의는 이재명 대통령이 7월 7~8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나토 방산 조달 협정 협상을 개시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 지 약 일주일 만에 나온 것이다.
러시아의 문제 제기
이번 성명의 핵심은 한국의 대나토 접근이다. 러시아는 한국이 나토 회원국들과 군사·군사기술 협력을 심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나토의 재무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러시아의 논리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나토 회원국들의 무기 재고가 한국과의 협력으로 보충되면,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한국의 참여를 직접적 무기 공급이 아니더라도 '사실상 공범'으로 표현했다.
러시아 외무부가 '나토가 러시아와의 전쟁 준비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상황'이라는 전제를 앞세운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러시아가 현재의 대치를 우크라이나를 넘어 나토 전체와의 대결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틀 안에서 한국의 행보를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월 경고에서 6월 항의, 7월 재항의로

이번 접촉은 돌발 사건이 아니라 몇 달간 이어진 압박의 연장선에 있다. 2026년 3월 말 루덴코 차관은 타스통신 인터뷰에서 한국이 군사 분야에서 나토 쪽으로 기울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제공하는 나토 회원국들의 재무장을 지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치명적 무기의 직간접 공급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며, 여기에는 미국·나토가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우선지원 요구목록(PURL) 참여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으면 양자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고 보복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PURL은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무기 목록을 나토에 전달하면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산 무기를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6월 25일에는 루덴코 차관이 이석배 대사를 만나 다른 각도에서 압박했다. 당시 러시아 외무부는 루덴코 차관과 이석배 대사의 면담 뒤 성명을 내고 두 가지를 전달했다. 첫째는 한반도 문제로, 북한 접경지 인근의 한미 군사 활동이 한반도와 역내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우려와 함께 평양에 대한 압박·제재를 포기하고 평화 의지를 실질적 행동으로 보이라는 요구였다. 둘째는 양자 관계로, 한국이 모스크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고 밝혀 왔음에도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대러 압박에 공개적으로 동조하는 데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7월 16일 항의는 이 흐름에서 초점을 '나토 재무장 참여'로 좁혀 다시 제기한 것이다. 3월이 경고, 6월이 대북·대러 정책 전반에 대한 항의였다면, 7월은 한국의 대나토 군사협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한 달도 안 되는 간격으로 대사를 두 차례 불러 입장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문제 제기 강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는 이 시기 물밑에서 관계 관리도 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5월 말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러시아 측 고위 당국자와 비공개 회동을 가진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그 직후와 이후로 대사가 두 차례 항의를 받았다는 점은, 물밑 접촉과 공개적 압박이 병행되는 현재 한러 관계의 이중적 성격을 보여준다.
누적된 갈등 요인과 직접적 계기: 이재명 대통령의 나토 앙카라 정상회의 참석
7월 16일 항의의 직접적 배경에는 그 직전 이재명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있다. 이 대통령은 2026년 7월 7일과 8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방산·안보 협력에 집중했다.
7월 7일 이 대통령은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면담하고 '한·나토 조달 기본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개시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이 협정이 나토와 파트너국 간 군수·방산 협력과 조달 계약에 필요한 법적·행정적 사항을 규정하며, 체결되면 연 15조 원 규모로 예상되는 나토 공동조달 시장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나토 방위산업 포럼 기조연설에서 한국과 나토가 무기체계를 거래하는 현재의 협력을 넘어 함께 연구·생산·운용하는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노르웨이·루마니아·캐나다 등 여러 나토 회원국 정상과 연쇄 회담을 하며 이른바 'K-방산 세일즈'를 이어갔다.
7월 8일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43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대우크라이나 1억 달러 포괄적 지원 공약을 설명하고,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면서 복구·재건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양측은 우크라이나 내 북한군 포로 문제와 관련해 당사자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하고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한국 정부는 이 포로들이 헌법상 한국 국민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관점에서 이 일정은 한국이 나토 재무장에 참여한다는 규정의 근거가 됐다. 한·나토 조달 기본협정은 한국 방산기업이 나토 회원국의 무기 조달망에 편입되는 통로이고, 나토 회원국들은 그 무기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젤렌스키와의 정상회담과 1억 달러 지원 공약이 더해지면서, 러시아는 한국의 앙카라 행보 전체를 대러 대결 구도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7월 16일 항의가 나토 재무장이라는 단일 쟁점에 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 분석과 한-러 관계 개선 전망: 러시아의 한국 압박, 한국의 물밑 관리 지속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연쇄 항의를 한러 관계 단절의 신호로 보기보다, 압박과 관리가 공존하는 구조로 해석한다. 이상준 국민대 러시아·유라시아학과 교수는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2026년 6월)에서 러시아가 한국의 대러 제재 동참과 한미일 안보협력에 강한 불만을 표출해 왔지만, 동시에 북러 협력이 한국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장기적으로 동북아 다자안보와 경제협력 재구성 속에서 한국을 중요한 행위자로 남겨두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균형 유지 자체를 핵심 이익으로 인식하며, 에너지·물류·자동차·가전·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할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장을 지낸 러시아 전문가다.
세종연구소는 '2026년 러시아 전망' 보고서에서 러시아 정부의 시각에서 한국이 서방 민주국가 가운데 관계 개선이 가능하고 바람직한 국가로 인식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러시아 고위 인사들이 한국을 '비우호국 중에서 가장 덜 비우호적인 나라'로 표현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러시아 외교가 직항 노선 재개와 교역 활성화 등을 통해 양국 관계의 부분적 회복을 목표로 다양한 제안을 내놓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한러 관계 개선에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2026년 7월 1일, 한국이 북러 관계 약화를 원한다면 폴란드를 경유해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지원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지원과 북러 밀착이 서로 연동돼 있다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런 분석을 종합하면, 러시아의 이번 항의는 한국을 밀어내려는 것이라기보다 한국이 나토 주도의 우크라이나 지원 구도에서 이탈하도록 유도하려는 압박에 가깝다. 러시아로서는 한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기보다 전쟁 이후를 대비해 부분적 회복의 여지를 남겨두는 편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은 대러 관계 관리와 한미일·한나토 안보협력, 우크라이나 지원이라는 상충하는 목표 사이에서 선택의 폭이 좁다.
따라서 관계 개선의 실질적 전기는 양국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지기 어렵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과 나토-러시아 대결 구도의 변화라는 외부 조건에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러-우 전쟁이 휴전이나 종전 국면으로 전환되고 대러 제재가 일부 완화되면 직항 재개, 교역 정상화 같은 실무 협력부터 복원될 여지가 있지만, 그 전까지는 물밑 접촉과 공개적 압박이 병행되는 현재의 관리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 러시아 외무부(МИД России), 「러시아 외무차관과 한국대사 면담 관련 성명」, 2026.07.16, https://www.mid.ru/
- РИА Новости, 「러시아, 한국의 나토 재무장 참여 용납 불가 입장 전달」, 2026.07.16, https://ria.ru/
- 국민일보, 「"나토 재무장에 한국 사실상 공모, 용납 못해" 러 외무부」, 2026.07.17,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30122975
- 이투데이, 「러시아 "한국, 나토 회원국 재무장 지원…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시 보복"」, 2026.03.29, https://www.etoday.co.kr/news/view/2570334
- 헤럴드경제, 「러 외무부 "韓, 대북 제재 포기하고 관계정상화 행동 보여야"」, 2026.06.26,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788770
- 이상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과 북러 관계 진행 현황」,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 No. 2026-17, 2026.06., https://www.asaninst.org/bbs/board.php?bo_table=s1_1&wr_id=601
- 세종연구소, 「2026년 러시아 전망: 우크라이나 전쟁, 국내 정치, 대외 정책」, 2025.12., https://sejong.org/web/boad/1/egoread.php?seq=12560
- 오마이뉴스, 「푸틴 잡아야 김정은 잡는다… 한러관계 복원이 대북 열쇠」, 2026.07.,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49055
- 경향신문, 「[속보] 이 대통령·젤렌스키 정상회담 "우크라 북한군 포로, 당사자 의사 존중·국제법 부합 해결"」, 2026.07.08,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081927001
- 헤럴드경제, 「李대통령, 나토와 '조달 기본협정' 추진…15조원 시장 공략」, 2026.07.08,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01412
- YTN, 「젤렌스키와 첫 정상회담…"인도적 지원·재건 노력 동참"」, 2026.07.08, https://www.ytn.co.kr/_ln/0101_202607082251575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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