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집에 샤워기가 있는데 왜 목욕탕에 갈까…러시아 바냐에서 중앙아시아 함맘·트빌리시 유황욕까지

유라시아뉴스 편집국 2026. 9. 5. 15:00

- 러시아에서 개별 아파트의 욕실이 빠르게 보급된 1960년대 후반 이후 바냐의 위생 기능은 줄었지만, 사교·휴식·공동체 공간으로서 의미는 오히려 강해져

 

- 중앙아시아에도 소련보다 오래된 독자적 함맘 전통이 있었으며, 부하라에서는 지금도 역사함맘이 현지 주민의 생활목욕과 외국인 관광체험을 동시에 담당

 

- 소련은 이런 문화를 처음 만든 것이 아니라 알마티 아라산 같은 대형 공중목욕 인프라를 추가했고, 오늘의 유라시아 목욕문화는 러시아 바냐·중앙아시아 함맘·카프카스 유황욕과 함맘·현대 웰니스가 겹친 결과에 가까워

 

 

집에 샤워기가 있고 욕조도 있는데 굳이 돈을 내고 다른 사람들과 목욕하러 갈 이유가 있을까. 현대 도시생활만 놓고 보면 공중목욕탕은 집에 온수가 없던 시대의 시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욕실이 바냐를 없애지 못했다. AnalyticResearchGroup이 2GIS 자료를 분석해 RBC가 2026년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말 러시아 50개 대도시에는 바냐와 사우나가 약 1만2,000곳 있었고 모스크바에만 약 1,300곳이 집계됐다. 2024년 바냐·사우나·샤워 서비스 시장규모도 432억 루블(한화 약 6,960억 원)로 전년보다 13.2%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 숫자는 전통 러시아식 바냐만을 센 것도, 실제 이용객 비율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공중에서 몸을 덥히고 쉬는 서비스가 사라진 산업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보여준다.

 

 

러시아 바냐의 역사는 소련보다 훨씬 오래됐다. 역사학자 이선 폴록은 러시아 지역의 바냐가 러시아 국가 형성 이전의 기록에도 등장하며 천년 넘게 위생·치유·의례·사교의 의미를 함께 지녀왔다고 설명한다. 1917년 혁명 뒤에는 국가가 이 오래된 습관을 현대적 위생정책의 도구로 다시 해석했다. 내전과 전염병 속에서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공목욕시설을 확보하는 것은 발진티푸스 같은 질병을 막는 문제와 연결됐다. 바냐는 전통이면서 동시에 소련 도시의 공공위생 인프라가 됐다.

 

그렇다면 각 가정에 욕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바냐는 사라져야 했다. 실제로 폴록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실내 배관과 욕조·샤워를 갖춘 아파트가 증가하면서 국가는 예전처럼 대규모로 새 바냐를 지어야 할 압박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때 오히려 바냐의 다른 기능이 선명해졌다. 집의 샤워는 몸을 씻는 기능만 놓고 보면 더 편리했지만, 친구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의 공적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고 공동체와 전통을 확인하는 경험까지 대체하지는 못했다. 폴록은 소련 말기로 갈수록 바냐가 단순한 위생시설 이상으로 받아들여졌고, 소련이 무너진 뒤에도 사람들은 사교·건강·사업·휴식·전통 체험 등 서로 다른 이유로 바냐를 찾았다고 설명한다.

 

 

이 이야기는 러시아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만 중앙아시아를 ‘소련식 바냐가 퍼진 지역’으로만 보면 순서가 뒤집힌다. 우즈베키스탄 정부 산하 역사문화시설 기관은 중세 이슬람 도시에서 함맘이 정결과 위생뿐 아니라 만남·대화·휴식을 담당한 핵심 도시시설이었다고 설명한다.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관리기관의 자료에도 18세기 말~19세기 중반 도시 곳곳에 10곳이 넘는 이름 있는 공중목욕탕이 기록돼 있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 이전부터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에는 자체적인 목욕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그 전통이 단순한 관광유산으로만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가 부하라다. Gazeta.uz의 2025년 현장취재에 따르면 100여 년 전 부하라에는 공중목욕탕 19곳이 있었고, 현재 역사적 공중함맘 가운데 남성용 보조리 코르드와 여성용 쿤자크가 실제 영업을 계속한다. 보조리 코르드는 오전 6시부터 늦은 밤까지 운영되며 11월~2월에는 이용객 대부분이 현지 주민이다. 60~70대 가운데 매주 일요일 새벽에 정기적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로 4~5월에는 외국 관광객이 늘어난다. 같은 역사건물이 주민에게는 생활목욕탕이고, 관광객에게는 마사지·스크럽·차를 결합한 전통문화 체험이 되는 셈이다. 2024년 Afisha의 현장안내도 대체로 아침에는 현지인이, 오후에는 관광객이 이용한다고 소개했다.

 

여성용 쿤자크 역시 매일 운영된다. Gazeta.uz는 부하라의 여성 함맘이 과거 출산이나 혼인 같은 생애의례와도 연결돼 있었지만 가정 욕실 보급과 생활양식 변화로 많은 옛 관습이 약해졌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전통의 단순한 ‘보존’이 아니다. 위생시설로서 절대적 필요는 줄었지만 생활목욕과 사교 일부가 남고, 그 위에 관광과 웰니스 서비스가 올라간 기능전환이다.

 

히바는 다른 단계에 있다. 이찬칼라의 아누시칸 함맘은 UNESCO 관련 기념물 목록에 포함된 17세기 목욕건축으로,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의 함맘 계보를 보여준다. 소련기인 1946년부터 복원이 시작됐고 1980년대에는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손질됐다는 지역 안내자료도 있다. 다만 현재 이 함맘을 히바 주민이 정기적인 생활목욕탕으로 이용한다는 최신 공공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히바는 ‘지금도 주민이 많이 쓰는 함맘’의 증거보다, 오래된 중앙아시아 목욕전통이 문화유산·관광·복원을 거쳐 오늘까지 남은 사례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

 

 

그 위에 소련기의 또 다른 층이 겹쳤다. 알마티의 아라산이 대표적이다. 카자흐스탄 건축유산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 말 당시 알마아타의 공중목욕시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식·핀란드식·동방식·혼합형 목욕과 수치료, 카페, 이발소, 마사지 시설까지 넣은 대형 복합시설이 계획됐고 1982년 완공됐다. 현재 알마티 공식 관광사이트는 아라산을 도시 역사의 일부가 된 장소로 소개한다. 이름은 소련 시절 그대로지만 내부 기능은 목욕을 넘어 스파·마사지·피트니스·미용·식음 서비스로 확대됐다.

 

비슈케크와 타슈켄트에서도 공공바냐가 완전히 과거형이 된 것은 아니다. 비슈케크시청은 2025년 12월 이틀 동안 시내 바냐·사우나 83곳을 점검했고, 49곳은 석탄·장작, 8곳은 가스·전기로 난방하고 나머지는 영업을 중단한 상태라고 밝혔다. 2026년에는 시립 바냐 2호가 정상 운영 중이며 연금생활자 할인도 유지된다는 공지가 나왔다. 타슈켄트에서는 러시아식 공중바냐를 표방하는 ‘The Бани Тельмана’가 2026년에도 운영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중앙아시아 목욕문화가 러시아식으로 대체됐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래된 함맘 전통 위에 소련 공중목욕 인프라와 러시아식 парная, 현대 사우나가 추가됐음을 보여준다.

 

 

카프카스로 가면 ‘소련의 영향’이라는 설명은 더 조심해야 한다. 트빌리시의 아바노투바니 유황욕은 소련보다 오래된 도시문화다. 조지아 국가관광청은 과거 사람들이 이곳에서 몇 시간씩 머물며 관계를 맺었고, 당시 사용하던 역사적 목욕시설들이 지금도 운영되며 현지인과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바쿠의 함맘도 마찬가지다. 아제르바이잔 관광청은 18~19세기의 아가 미카일·아가 제이날·타제 베이 함맘 가운데 일부가 현재까지 영업하며 지역 주민들이 여전히 찾는다고 소개한다. 특히 타제 베이는 현대화 뒤 터키식·러시아식·핀란드식 목욕을 한 공간에 넣었다. 소련식 바냐가 카프카스의 목욕문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래된 함맘 전통과 러시아·유럽식 목욕 포맷이 현대 웰니스 시장에서 섞인 셈이다.

 

 

결국 ‘집에 샤워가 있는데 왜 목욕탕에 가느냐’는 질문은 목욕탕의 목적을 씻는 일 하나로 볼 때만 이상하다. 유라시아의 공중목욕은 애초부터 하나의 문화도 아니었다. 러시아의 바냐, 부하라·사마르칸트·히바의 함맘, 트빌리시의 유황욕, 바쿠의 함맘은 서로 다른 역사와 종교·도시생활 속에서 만들어졌다. 소련은 이들을 처음 만든 것이 아니라 일부 전통을 공공위생과 도시서비스 안에서 재구성하고, 알마티 아라산 같은 새로운 대형시설을 덧붙였다. 집에 욕실이 생긴 뒤 위생의 필요는 약해졌지만, 부하라에서는 생활목욕과 관광이 한 건물 안에서 공존하고, 러시아에서는 사교와 웰니스가 바냐를 살려냈으며, 카프카스에서는 오래된 도시전통이 현대 스파와 결합했다. 오늘의 공중목욕은 어느 한 제국이나 국가가 주변에 남긴 흔적이라기보다, 각 지역의 오래된 문화가 시대마다 새로운 기능을 받아들이며 살아남은 결과에 가깝다.

 

출처

  1. Ethan Pollock, Without the Banya We Would Perish: A History of the Russian Bathhouse,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2. RBC Исследования рынков / AnalyticResearchGroup, 「Бани и сауны в России: массовый рынок с разными форматами отдыха」, 2026-05-27.
    https://marketing.rbc.ru/articles/16593/
  3. RBC Исследования рынков / AnalyticResearchGroup, 「Рынок бань в России: рост спроса на нестандартные форматы и сезонные пики популярности」, 2025-05-19.
    https://marketing.rbc.ru/articles/15788/
  4. ARCHCODE Kazakhstan, 「Баня Арасан」.
    https://archcode.kz/objects/view?id=32
  5. Visit Almaty, 「Оздоровительный комплекс “Арасан”」.
    https://visitalmaty.kz/activity/ozdorovitelnyj-kompleks-arasan/
  6. 비슈케크시청, 「В Бишкеке за два дня проверили 83 бани и сауны」, 2025-12.
    https://www.bishkek.gov.kg/ru/post/32653
  7. 비슈케크시청, 「Льготы для пенсионеров при посещении бани №2 сохраняются в полном объеме」, 2026.
    https://www.bishkek.gov.kg/ru/post/33599
  8. Afisha.uz, 「Женские дни каждый день: “The Бани Тельмана” запускает новый летний формат отдыха」, 2026-06-03.
    https://www.afisha.uz/ru/gorod/2026/06/03/the-bani-telmana
  9. Georgia Travel, 「Tbilisi Sulfur Baths」.
    https://georgia.travel/tbilisi-sulfur-baths
  10. Azerbaijan Travel, 「Relax at Baku’s traditional hammams」.
    https://azerbaijan.travel/traditional-hammams-baku
  11. 우즈베키스탄 내각 산하 중요 사회·문화·역사시설 건설·복원국, 「Горячие бани мусульманского средневеκовья」.
    https://dkm.gov.uz/en-US/goracie-bani-musulmanskogo-srednevekova
  12. 레기스탄 앙상블 관리국, 「Восточные хамамы Самарканда」.
    https://registon.uz/ru/media-center/news/item/114-vostochnye-khamamy-samarkanda
  13. Gazeta.uz, 「Городские бани Бухары: Как они устроены, какие услуги в них оказывают и сколько это стоит」, 2025.
    https://sp.gazeta.uz/page67855493.html
    우즈베크어판: https://sp.gazeta.uz/page67999635.html
  14. Afisha.uz, 「Бухара в деталях: 8 мест, где история встречается с современностью」, 2024-08-28.
    https://www.afisha.uz/ru/tourism/2024/08/28/bukhara
  15.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Itchan Kala」 및 Ichan Kala 기념물 목록.
    https://whc.unesco.org/en/list/543
    기념물 목록 PDF: https://whc.unesco.org/document/153716
  16. Khiva Interactive Guidebook, 「Anusha Khan Baths」 및 「Heritage and Restoration」.
    https://www.khiva.info/display.php?lang=en&page=tour%2Fwithstory%2Fankb&site=khiva
    https://www.khiva.info/gb/heritage/body.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