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왜 러시아에는 조지아 음식점이 이렇게 많을까… 제국의 샤슬릭에서 동네 힌칼리집까지

유라시아뉴스 편집국 2026. 8. 29. 15:00

- 러시아인의 카프카스 음식 경험은 스탈린 시대보다 앞선 19세기 제정러시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소련은 이미 존재하던 식문화의 통로를 국가 공공급식 체계를 통해 크게 넓혀

 

- 조지아 음식은 스탈린 시대 크렘린과 모스크바 엘리트의 고급 외식문화로 위상을 얻은 뒤 아라그비, 철도역 식당, 샤슬릭 전문점, 요리책과 가정식으로 확산

 

- 소련 붕괴 뒤에는 이미 익숙해진 하차푸리·힌칼리·하르초 등이 고급 레스토랑부터 패스트캐주얼·프랜차이즈까지 재상품화됐고, 정치적 충격을 겪으면서도 러시아 외식시장의 성숙한 장르로 남아

 

 

모스크바에서는 조지아 음식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23년 러시아 경제지 코메르산트가 2GIS 자료를 인용해 집계했을 때 모스크바와 모스크바주에서 조지아 음식을 제공하는 카페·레스토랑은 약 900곳, 패스트푸드점은 223곳이었다. 이는 ‘순수 조지아 전문 레스토랑 900곳’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조지아 음식이 러시아 최대 도시권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대중 외식 장르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보여준다. 같은 해 1~5월 조지아 음식 프랜차이즈 개설 문의도 전년 동기보다 35% 늘었고 전체 외식 프랜차이즈 문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에서 32%로 높아졌다.

 

이 현상을 단순히 “러시아에 조지아인이 많이 살아서”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더 긴 역사를 보면 러시아인의 카프카스 음식 경험은 소련보다 앞선다. 역사학자 에릭 스콧(Erik R. Scott)은 제정러시아 말기의 외식문화를 다룬 선행연구를 토대로 19세기 말이면 러시아 주요 도시에 카프카스나 중앙아시아의 지명을 내건 식당이 적어도 한 곳씩 있었고, 러시아의 카프카스 팽창 뒤 샤슬릭도 19세기 러시아 메뉴에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모스크바시가 발행한 문화유산 자료에도 제정 말기 페트롭스키 공원에 있던 드미트라제 공작의 레스토랑 ‘카프카스(Кавказ)’가 모스크바뿐 아니라 유럽 러시아에서 처음 등장한 샤슬릭 전문점으로 소개된다. 내부와 외관을 조지아의 두한을 연상시키도록 꾸몄고 조지아 음악가와 가수들이 공연했으며, 처음에는 계절영업을 하다가 인기가 높아지면서 연중 영업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스탈린이 러시아에 조지아 음식을 ‘처음 소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스탈린 시대는 이미 존재하던 카프카스 음식에 전에 없던 사회적 위신을 부여한 강력한 가속기였다. 스콧의 연구에 따르면 1930년대 새 소비문화와 ‘풍요로운 사회주의 생활’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조지아의 와인, 치즈, 향신료와 여러 요리를 한꺼번에 차리는 풍성한 식탁은 소련이 보여주려던 풍요의 이미지와 잘 맞았다. 조지아 음식이 스탈린 자신과 카프카스 출신 측근들의 식탁에서 즐겨졌다는 점도 이 음식에 정치적·사회적 권위를 더했다. 스콧은 조지아 음식이 제정러시아 고급식당의 프랑스 요리를 대신할 수 있는 국내의 세련된 고급요리로 기능했다고 분석한다. 2016년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출간된 그의 후속 단행본도 조지아 음식이 스탈린의 취향과 연결돼 상승하는 소련 사회계층의 ‘문화적 세련됨’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으며, 그 인기는 스탈린 사후에도 지속됐다고 정리한다.

 

그 상징적인 공간이 모스크바의 아라그비(Арагви)였다. 개업연도는 자료가 엇갈린다. 모스크바시 공식 문화자료는 1938년으로 기록하지만 스콧의 연구는 1940년으로 서술하므로 여기서는 ‘1930년대 말 문을 연 식당’으로 처리하는 편이 안전하다. 중요한 것은 연도보다 운영방식이다. 스콧이 러시아와 조지아의 문서보관소 자료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라그비는 조지아공화국 상무부의 직접 관리 아래 있었고 와인·치즈·고기·채소·광천수·허브와 향신료를 조지아에서 별도로 공급받았다. 조지아 출신 요리사들도 모스크바로 이동했다. 아라그비의 성공 뒤에는 아르메니아공화국의 ‘아라라트’,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의 ‘바쿠’,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의 ‘우즈베키스탄’ 같은 민족 레스토랑이 뒤따랐다. 즉 조지아 음식은 여러 소비에트 공화국의 음식을 모스크바에 전시하는 모델을 만드는 데 선행 사례가 됐다.

 

하지만 조지아 음식이 엘리트의 취향을 넘어 러시아와 소련 전역의 일상으로 확산된 과정을 설명하는 핵심 연결고리는 전후 소련의 국가 공공급식 체계인 옵셰피트(Общепит)다. 소련 상무부는 1949년 철도역 식당의 권장 최소메뉴에 샤슬릭을 넣었다. 여기서 샤슬릭을 조지아 고유 음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어원도 튀르크계이고 카프카스 전역에서 공유된 음식이지만, 소련의 카프카스·조지아 식문화 대중화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가 됐다. 흐루쇼프 시대에는 샤슬릭을 전문으로 파는 대중식당 ‘샤슬리치나야(шашлычная)’가 크게 늘었고 스콧에 따르면 한때 모스크바 거의 모든 동네에서 이런 식당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1963년 소련 공공급식 전문지가 소개한 한 샤슬릭집에서는 로비오와 하르초 같은 조지아 음식도 함께 팔았다.

 

대중화는 식당 숫자만 늘린 것이 아니었다. 샤슬릭은 반조리제품으로 만들어져 가정으로 들어갔고 아라그비의 대표 메뉴였던 치킨 타바카도 동네 카페, 노동자 구내식당, 가정식으로 이동했다. 아라그비의 주방장 니콜라이 키크나제는 비조지아계 요리사들에게 조지아 요리를 가르쳤고, 대량급식용 조지아 소스와 향신료 조리법을 책과 공공급식 전문지를 통해 표준화했다. 스콧은 아라그비의 산업형 주방 조직이 이후 소련 급식시설의 모델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설명한다. 조지아 음식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조지아인 주방장이 필요한 구조에서, 러시아와 다른 공화국의 요리사도 표준화된 조리법을 배워 재현할 수 있는 구조로 넘어간 것이다.

 

1956년 발간된 소련의 대형 요리책 《Кулинария》는 이 변화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보여준다. 스콧이 책의 구성을 분석한 결과 ‘민족요리’ 항목에는 조지아 요리가 43개 실려 가장 많았고 아르메니아가 29개로 뒤를 이었다. 43개 조지아 요리 가운데 10개는 민족요리 항목뿐 아니라 일반 요리 본문에도 함께 수록됐다. 이 숫자를 당시 소비자의 인기투표로 볼 수는 없지만, 국가가 편찬한 대표 요리책에서 조지아 음식이 여러 ‘민족음식’ 중 하나에 머물지 않고 일반 소련 식생활 속으로 이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은 된다. 책에는 조지아 와인과 치즈, 보르조미 광천수, 소스, 차와 귤도 소련의 풍요로운 식탁을 상징하는 상품처럼 제시됐다.

 

여행과 대중문화도 이러한 친숙성을 강화했다. 스콧은 전후 관광 인프라가 확대되면서 조지아가 소련의 대표적인 관광목적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설명한다. 일부 관광객들은 현지에서 익힌 조리법과 음식문화를 자신의 가정으로 가져갔고, 조지아식 식탁과 건배문화는 영화와 음악을 통해 조지아를 방문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퍼졌다. 게오르기 다넬리야 감독의 1969년 영화 《Не горюй!》는 조지아식 연회를 중요한 장면으로 활용했고, 바흐탕 키카비제 같은 대중스타는 노래와 영화 속에서 조지아식 노래·춤·건배의 이미지를 소련 전역에 전달했다. 음식점에서 소비되는 것은 하차푸리나 하르초 한 그릇뿐 아니라 따뜻한 남쪽, 와인, 긴 건배와 넉넉한 환대로 구성된 ‘조지아의 이미지’이기도 했다.

 

소련이 무너진 뒤에는 국가가 만들었던 친숙성을 시장이 이어받았다. 2005년 《오고뇩》은 당시 모스크바에서 조지아 음식점이 민족음식점 가운데 가장 많다고 평가하며 조지아 요리를 맛있고 든든하며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고급 레스토랑부터 대중적인 저가업소까지 폭넓게 상품화할 수 있는 음식으로 설명했다. 이는 공식 통계나 학술연구가 아니라 당시 외식시장에 대한 언론의 평가라는 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듬해 다른 자료에서도 조지아 요리가 이미 조지아계 공동체만의 사업을 넘어선 정황은 확인된다. 2006년 menu.ru의 ‘조지아 요리’ 항목에는 모스크바의 식당과 카페 124곳이 등록돼 있었지만 모스크바 조지아 향우회가 자신들의 업소로 인정한 곳은 30곳뿐이었다. 이 숫자만으로 나머지 94곳의 소유주 국적을 추정할 수는 없지만, ‘조지아 음식점’이라는 시장 분류가 민족공동체의 범위보다 훨씬 넓게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보여준다.

 

2010년대에는 힌칼리와 하차푸리가 현대적인 패스트캐주얼과 체인점으로도 확장됐다. 2014년 《오고뇩》에 등장한 조지아계 외식업자들은 당시 몇 년간 모스크바에서 조지아 음식점이 빠르게 늘고 비조지아계 유명 외식사업자까지 시장에 진입한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낮은 원가와 빠른 판매속도를 힌칼리와 하차푸리의 상업적 장점으로 거론했지만, 이는 개별 업계 관계자의 경험적 평가이므로 조지아 음식 전체의 수익성을 입증하는 통계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다만 2023년 프랜차이즈 문의와 2GIS 자료까지 이어서 보면 조지아 음식이 소련시대의 향수에만 기대는 오래된 장르가 아니라 새로운 사업자가 계속 재생산하는 외식 포맷으로 남았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정치와 식탁이 완전히 분리돼 있었던 것도 아니다. 2006년 러시아·조지아 관계가 급격히 악화했을 때 국제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러시아 경찰이 조지아인이 운영하거나 조지아를 테마로 한 사업체를 광범위하게 단속했고 다수의 음식점이 폐쇄되거나 영업중단 압력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모스크바의 한 조지아 음식점 운영자가 경찰 단속 뒤 영업을 포기하고 러시아를 떠난 사례도 보고됐다. 정치갈등이 실제 외식업에 피해를 줄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조지아 음식이라는 장르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2014년에는 다시 빠른 출점 증가가 업계의 화제가 됐고 2023년에는 프랜차이즈 관심이 이탈리아 음식점과 경쟁할 정도로 높아졌다.

 

최근에는 오히려 ‘새로운 유행’보다 성숙시장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수 있다. NF Group가 2026년 3월 모스크바의 주요 쇼핑몰 10곳을 조사한 자료에서는 조지아 음식점이 20곳으로 전년보다 4.8% 줄었다. 모스크바 전체가 아니라 쇼핑몰 10곳만 본 표본이므로 러시아 전체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조지아 음식이 이제 막 발견된 이국적인 음식이 아니라 점포의 출점과 퇴출, 체인 경쟁과 원가관리가 동시에 벌어지는 오래된 대중 외식 장르가 됐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러시아에 조지아 음식점이 많은 이유는 조지아계 이주민의 존재나 스탈린 한 사람의 취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제정러시아의 카프카스 진출이 먼저 맛의 통로를 열었고, 스탈린 시대에는 그 음식이 고급문화의 위신을 얻었으며, 전후에는 옵셰피트와 철도역·동네 식당·요리책·관광·대중문화가 조지아 음식을 전 소련의 일상으로 옮겼다. 소련 붕괴 뒤 민간 외식업은 이미 익숙해진 메뉴와 ‘풍성한 남쪽의 식탁’이라는 이미지를 저가 식당에서 고급 레스토랑까지 다시 상품화했다. 러시아와 조지아의 국경과 정치관계는 여러 번 달라졌지만, 러시아인의 식탁에서 조지아 음식은 오랫동안 ‘낯선 외국 음식’이 아니라 한때 같은 나라에서 배우고 먹었던 익숙한 음식으로 남아 있었던 셈이다.

 

주요 출처 및 참고자료

  1. Erik Rattazzi Scott, “Familiar Strangers: The Georgian Diaspora in the Soviet Union,”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2011.
  2.       , “Edible Ethnicity,” in Familiar Strangers: The Georgian Diaspora and the Evolution of Soviet Empire,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pp. 87~122.
    DOI: https://doi.org/10.1093/acprof:oso/9780199396375.003.0004
    Oxford Academic: https://academic.oup.com/book/10627/chapter-abstract/158629652
  3. 「Московское наследие」 특별호, 모스크바시, 2019, 「Ресторан “Кавказ”」, 잡지 표기 pp. 78~79.
    PDF: https://www.mos.ru/upload/documents/files/9467/spets-vypusk-zhurnala-mn_2019_web.pdf
  4. 「Москва гастрономическая」, 모스크바시 공식 문화자료, 「“Арагви”. Московская легенда」.
    PDF: https://www.mos.ru/upload/documents/oiv/moskva_gastronomicheskaya.pdf
  5. Коммерсантъ / Огонёк, 「Будем дружить кухнями」, 2005-09-18.
    https://www.kommersant.ru/doc/2295735
  6. Коммерсантъ, 「Москва грузинская」, 2006-10-04.
    https://www.kommersant.ru/doc/710201
  7. Огонёк / Коммерсантъ, 「Аутентичность вкуса」, 2014-05-12.
    https://www.kommersant.ru/doc/2465151
    보조자료: 「Экономика хинкали」, 2014-05-12.
    https://www.kommersant.ru/doc/2468061
  8. Коммерсантъ, 「Грузию вписали в меню — У российских рестораторов меняется концепция」, 2023-06-15, Газета «Коммерсантъ» №105, p. 7.
    https://www.kommersant.ru/doc/6043957
  9. Human Rights Watch, Singled Out: Russia’s Detention and Expulsion of Georgians, 2007, “Targeting Georgian Businesses and Georgian Workers.”
    보고서: https://www.hrw.org/report/2007/09/30/singled-out/russias-detention-and-expulsion-georgians
  10. Коммерсантъ, 「В московских ТЦ сократилось число ресторанов русской и грузинской кухни」, 2026-03-11.
    https://www.kommersant.ru/doc/8498079
    상세판: https://www.kommersant.ru/doc/8497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