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메니아는 EU와의 무역 확대를 추진하면서도 EAEU 탈퇴를 결정하지 않았으며, 러시아와의 경제관계 역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
- EU는 러시아의 무역제한에 대응해 아르메니아산 상품 약 80%에 2년간 임시 무역자유화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의회 본회의 절차도 이어지고 있어
- 동시에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의 상품 제한을 EAEU 내부 절차를 통해 문제 삼으면서 기존 경제권에서의 권리도 활용 중
- 현재 변화는 러시아와의 즉각적인 ‘이혼’보다 EAEU 관계를 유지하면서 EU라는 추가 시장을 확보하는 경제적 다변화에 가까워
9월 1일 SCO 정상회의가 열린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EU와 EAEU 사이의 선택을 공개석상에서 직접 논쟁했다. 푸틴은 EU 가입절차를 시작하는 법을 채택하면서 EAEU에 그대로 남는다는 설명에는 동의하기 어렵고 두 경제권의 동시 회원은 양립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파시냔은 아르메니아가 EAEU 탈퇴를 통보한 적이 없고 아직 명확한 선택을 내릴 시점도 오지 않았다고 맞섰다. 국민투표를 언제·어떤 방식으로 할지도 두 정상의 시각이 달랐다. 러시아 측은 동시에 양국 경제관계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르메니아 총리실이 공개한 회담 전문에서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의 주요 무역·경제 파트너로 약 30%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설명됐고, 올해 상반기 양국 교역은 약 25억 달러(한화 약 3조 3,640억 원)로 제시됐다.
다음 날 EU는 아르메니아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조치를 한 단계 진전시켰다. EU 이사회는 러시아의 최근 수입·통과 제한으로 타격을 받은 아르메니아산 상품에 대해 2년 동안 임시 무역자유화 조치를 적용하는 데 입장을 모았다. EU 제안문이 적시한 러시아 제한 품목에는 브랜디와 와인, 광천수, 농산물 등이 포함된다. 새 조치는 현재 아르메니아의 대EU 수출 가운데 약 80%에 해당하는 상품군의 관세 접근을 넓히는 내용이다. 9월 3일에는 유럽의회 국제통상위원회(INTA)가 제안을 수정 없이 통과시켰다. 유럽의회 입법추적 시스템은 이날 위원회 표결에 이어 9월 7일 위원회 보고서 A10-0226/2026이 본회의에 제출됐고, 9월 14일 1차독회 본회의가 예정돼 있다.
EU의 지원은 무조건적인 시장개방도 아니다. 아르메니아 상품은 원산지 규정을 지켜야 하고 세관·행정협력을 유지해야 하며, 아르메니아가 EU산 상품에 새 제한을 만들지 않는다는 조건도 붙는다. EU-아르메니아 포괄적·강화된 동반자협정(CEPA)의 민주주의·법치·인권 등 핵심요소 준수도 조건에 포함된다. EU 생산자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경우 다시 관세를 적용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도 마련돼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를 ‘EU가 러시아 시장을 즉시 대신해준다’고 읽기보다 시장 다변화를 돕는 한시적 안전망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경제구조를 보면 아르메니아가 왜 한 번에 러시아와 결별하기 어려운지도 드러난다. 파시냔 총리가 8월 EAEU 정부간회의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아르메니아는 EAEU 회원국에서 약 50억 달러(한화 약 6조 7,280억 원)를 수입하고 약 32억 달러(한화 약 4조 3,059억 원)를 수출했다. 반면 EU 집행위원회 집계에서 2025년 EU는 아르메니아 전체 상품교역의 11.3%, 수출의 7.9%를 차지했다. 러시아와 EAEU가 제공해 온 시장·노동 이동·관세체계를 단기간에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9월 8일 새로 확인된 움직임은 이 점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티그란 가스파리안 아르메니아 경제차관은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산 상품에 적용한 제한에 대해 자국이 EAEU 틀 안에서 이의를 제기했으며, 연합 내부 메커니즘을 통해 장벽이 제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그는 아르메니아 경제의 장기적 회복력을 위해 새로운 수출시장을 열고 품질과 표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즉 예레반은 러시아 시장의 장벽에 대응하면서 EAEU 자체의 구제수단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EU를 포함한 새로운 시장을 넓히려 하고 있다. ‘EAEU에서 나와 EU로 간다’는 단선적인 전환보다 두 경제권 사이에서 실제 선택지를 늘리는 과정이라는 해석에 더 가까운 행동이다.
제도적으로도 아르메니아는 아직 ‘EU행’을 완료한 국가가 아니다. 아르메니아 의회가 2025년 EU 가입절차 개시를 지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지만, 이는 EU에 제출된 공식 가입신청서와는 다르다. 아르메니아는 아직 EU 후보국도 아니다. 파시냔 역시 향후 공식 신청과 EU의 로드맵이 구체화돼야 최종적인 국내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해 왔다. 동시에 그는 EU와 EAEU에 최종적으로 동시에 가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관세를 낮추는 것과 실제 수출시장을 바꾸는 것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 현지 경제·정치 연구자 흐란트 미카엘리안은 유럽시장까지의 운송비와 EU의 제품·식품안전 규격, 기존 유통망과 경쟁구조를 감안하면 관세혜택만으로 러시아향 상품이 곧바로 EU로 이동하기 어렵다고 본다. 아르메니아는 과거에도 EU의 GSP+ 특혜를 받은 경험이 있지만, 낮은 관세가 자동으로 대규모 수출확대를 만들지는 않았다. 새 제도가 효과를 내려면 생산규격과 물류, 유통업체, 마케팅까지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카네기유럽의 남캅카스 전문가 토머스 드발은 이런 상황을 ‘diversification, not divorce’, 즉 ‘이혼이 아니라 다변화’라고 표현한다.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와의 안보·경제 관계를 축소하고 서방과 접점을 넓히는 방향은 분명하지만, 러시아와 연결된 무역과 노동·기업 네트워크를 단기간에 끊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현재 진행되는 것은 어느 한 편을 즉시 선택하는 외교적 전향이라기보다 러시아에 대한 의존 때문에 선택 자체가 불가능했던 구조에서 여러 출구를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향후 판단할 지표도 외교행사의 횟수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EU 임시 무역조치가 실제 발효되는지, 아르메니아 기업이 EU 규격을 맞춰 수출을 늘리는지, 러시아를 통하지 않는 물류·에너지 경로가 확대되는지, 그리고 아르메니아 정부가 실제 EU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는지를 봐야 한다. 이 변화가 쌓여야 EAEU와 EU 사이의 선택이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가능한 선택이 된다. 현재 단계의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이별’한 국가라기보다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러시아밖에는 갈 곳이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라고 보는 편이 공개된 자료에 가장 가깝다.
주요 출처 및 참고자료
- 아르메니아 총리실, 니콜 파시냔 총리-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비슈케크 회담 전문, 2026.9.1. https://www.primeminister.am/en/press-release/item/2026/09/01/Nikol-Pashinyan-Vladimir-Putin/
- 아르메니아 총리실, 2026~2031년 정부 프로그램 의회 연설, 2026.8.24. https://www.primeminister.am/en/statements-and-messages/item/2026/08/24/Nikol-Pashinyan-Speech/
- 아르메니아 총리실, EAEU 정부간회의 연설, 2026.8.7. https://www.primeminister.am/en/press-release/item/2026/08/07/Nikol-Pashinyan-Speech-EIC/
- EU 이사회, 「Council backs temporary trade measures to support Armenia」, 2026.9.2. https://www.consilium.europa.eu/en/press/press-releases/2026/09/02/council-backs-temporary-trade-measures-to-support-armenia/
- European Commission, COM(2026) 348, Temporary trade-liberalisation measures applicable to Armenian products. 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TXT/?uri=COM:2026:348:FIN
- European Commission, 「EU trade relations with Armenia」. https://policy.trade.ec.europa.eu/eu-trade-relationships-country-and-region/countries-and-regions/armenia_en
- European Parliament Legislative Observatory, 2026/0189(COD) — 2026.9.3 INTA 표결, 9.7 위원회 보고서 본회의 제출, 9.14 1차독회 본회의 예정. https://oeil.europarl.europa.eu/oeil/en/procedure-file?reference=2026%2F0189%28COD%29
- Agence Europe, INTA 2026.9.3 표결 35-2-3·무수정 가결 보도, 2026.9.4. https://agenceurope.eu/fr/bulletin/article/13930/28/la-commission-du-commerce-international-du-pe-valide-les-mesures-temporaires-de-liberalisation-des-exportations-armeniennes-vers-lue
- Armenpress, INTA 2026.9.3 표결 35-2-3·무수정 가결 보도. https://armenpress.am/en/article/1259703/amp
- Thomas de Waal, Carnegie Europe, 「There Is No Shortcut for Europe in Armenia」, 2026.4.30. https://carnegieendowment.org/europe/strategic-europe/2026/04/there-is-no-shortcut-for-europe-in-armenia
- ARKA, 흐란트 미카엘리안 인터뷰, 2026.9.3. 아르메니아 민간 경제전문매체. https://www.arka.am/en/news/interview/new-eu-trade-incentives-will-not-solve-key-problems-of-exports-from-armenia-economist-exclusive/
- Armenpress, 「Armenia lodges EAEU complaint over Russian restrictions on Armenian products」, 2026.9.8. 경제차관 티그란 가스파리안 공개발언. https://armenpress.am/en/article/1259942
- ARKA, 「Armenia aims to enter new markets to strengthen economic resilience – Deputy Minister」, 2026.9.8. https://www.arka.am/en/news/economy/armenia-aims-to-enter-new-markets-to-strengthen-economic-resilience-deputy-min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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