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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상반기 유라시아 톺아보기: 네 가지 충격, 겹쳐진 선택

유라시아뉴스 편집국 2026. 7. 14. 23:38

2026년 1월부터 6월까지 모스크바와 아스타나, 타슈켄트, 예레반, 바쿠, 트빌리시에 들어온 충격은 네 갈래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제재는 안보와 결제망을 흔들었고,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은 호르무즈해협과 에너지 가격을 거쳐 카스피해 연안까지 파급됐다. 보호무역과 공급망 분절은 우회수출 통제와 현지생산 요구를 강화했다. 빙하 감소와 아무다리야 물 배분은 속도는 느리지만 되돌리기 어려운 제약으로 남았다.

 

그림 1. 2026년 상반기 유라시아 지역에 영향을 끼친 4가지 주요 이슈

 

그러나 네 충격을 같은 크기의 '4대 위기'로 놓으면 상반기의 실제 인과관계를 과장하게 된다. 전쟁·제재와 이란발 에너지 충격은 즉각적인 가격·안보 변수였다. 통상 분절은 금융·통관·산업정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작동했고, 물 문제는 정상회의와 공동행동계획을 끌어냈지만 코쉬테파 운하처럼 당사자 범위가 맞지 않는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했다.

 

국가들의 선택도 한 줄로 나뉘지 않았다. 러시아와 안보·노동·전력망을 유지하면서 중국 자본을 받고, 유럽연합(EU)과 연결성 사업을 논의하고, 튀르키예나 한국에서 기술을 들여오는 조합이 한 나라 안에서 함께 나타났다. '친러 대 친서방'이라는 분류보다 생존·성장·안보·정통성에 필요한 관계를 분야별로 중첩하는 방식이 상반기 유라시아의 구조에 가까웠다.

 

그림 2. 글로벌 충격에서 국가별 대응까지의 전달 경로

 

 

2026년 상반기 주요 사건 타임라인

그림 3. 2026년 상반기 주요 타임라인. 7월 사건은 후속 상태로 구분

 

1. 러시아: 외교 공간은 넓혔지만 거래 조건은 좁아졌다

 

2026년 상반기 러시아-우크라이나 협상은 접촉의 재개와 타결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포로 교환과 단기 휴전 시도가 있었지만 포괄적 휴전이나 정치적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6월 G7 결과문도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 압박 강화를 함께 담았다. 전쟁은 끝을 향한 선형 경로보다 협상과 교전이 병행되는 상태로 상반기를 마쳤다.

 

전쟁의 물리적 파급은 5월 말 나토 영토에 닿았다. 5월 28~29일 밤 러시아의 게란-2 자폭 드론이 루마니아 동부 갈라치의 10층 아파트 옥상에 떨어져 탄두 전량이 폭발했고, 화재로 2명이 다쳤다 — 2022년 전면 침공 이후 나토 회원국 영토에서 처음 나온 민간인 인명 피해다. 루마니아 공군의 F-16 2대와 헬기가 발사 승인을 받고 대응 출격했으나 격추하지 않았다. 니쿠쇼르 단(Nicușor Dan) 루마니아 대통령은 국방최고회의를 소집하고 이를 전면 침공 개시 이후 자국 영토에서 벌어진 가장 심각한 안보 사건으로 규정했다. 루마니아는 러시아 대사를 초치하고 콘스탄차의 러시아 총영사관을 폐쇄했으며, 오아나 초이우(Oana Țoiu) 외무장관은 이 사건이 나토 조약 4조(안보 협의) 발동을 정당화하는 범주에 든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의 전쟁이 또 하나의 선을 넘었다며 21번째 대러 제재 패키지 준비를 언급했고, 마르크 뤼터(Mark Rutte) 나토 사무총장은 루마니아와의 연대를 표명했다.

 

다만 사건의 성격 규정은 갈라치에서조차 신중했다. 루마니아 정부 스스로 이를 루마니아를 겨냥한 의도적 공격이 아니라 인접한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만 공격의 유탄으로 판단했다. 2025년 9월 폴란드의 러시아 드론 격추와 4조 발동, 4월 갈라치 인근의 드론 파편 낙하(인명 피해 없음)에 이어지는 이 사건은, 전쟁이 의도와 무관하게 나토 영토로 번지는 위험과 그 위험을 확전 없이 관리하려는 나토 측의 계산을 함께 보여줬다. '러시아의 나토 공격'과 '무해한 사고'라는 양 극단의 서술 모두 루마니아 정부의 공식 판단과 다르다.

 

경제에서도 '제재로 곧 붕괴한다'와 '전시경제가 충격을 모두 흡수했다'는 설명은 모두 자료보다 앞서 나간다. 세계은행은 4월 러시아의 2026년 성장률을 0.8%로 전망했고 6월에도 이를 유지했다. EDB는 6월 1.0%로 전망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6월 19일 기준금리를 14.25%로 낮췄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인하를 경기 위축 국면과 연결해 보도했다. 높은 군수 지출이 수요를 떠받치는 동안 물가·인력·재정·생산능력의 제약이 커진다는 두 흐름이 동시에 잡힌다.

 

5월 19~20일 푸틴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은 이 양면성을 잘 드러냈다. 중국·러시아의 공식 발표와 국영매체는 다극질서, 에너지 안정, 기술·교육·무역 협력을 앞세웠다. 미국 통신사 AP는 40여 건의 문서와 정상 간 결속을 전하면서도 대형 가스관의 가시적 진전은 제한적이라고 짚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크렘린이 노선과 주요 조건에 '전반적 이해'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가동 시점은 제시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법적 단계가 중요하다. '시베리아의 힘-2'에는 앞서 구속력 있는 양해 문서가 있었지만, 2026년 5월 현재 가격·착공·공급 개시 일정이 확정된 최종 상업계약은 확인되지 않았다. 합의가 전혀 없었다는 표현도, 사업이 확정됐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러시아는 유럽 시장 축소를 중국 수요로 보완하려 했고, 중국은 공급선 다변화의 이익과 가격 협상력을 함께 유지했다.

 

6월 17~18일 카잔 러시아-ASEAN 정상회의도 비슷했다. 러시아와 ASEAN은 안보·무역·에너지·농업·디지털·과학·관광을 포괄하는 선언을 냈다. 러시아 정부와 국가 연계 매체가 이를 '고립의 종식'과 다극성의 증거로 제시한 데 비해, AP 등 국제 통신은 외교적 무대의 복원과 구체적인 대형 거래를 구분했다. 정상회의는 러시아가 비서방권에서 회의 소집자이자 에너지·안보 상대라는 사실을 보여줬지만, 선언의 폭이 곧 계약의 깊이를 보증하지는 않았다.

 

5월 27~29일 푸틴 대통령은 현 임기 들어 두 번째로 카자흐스탄을 국빈방문했고, 아스타나 EAEU 최고평의회 정상회의가 이와 연계됐다. 지정학 분석기관 스페셜유라시아(SpecialEurasia)에 따르면 의제에는 달러·SWIFT를 우회하는 양자 결제 체계와 남북국제운송회랑(INSTC) 동부 노선 협력이 올랐다.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을 경유해 이란 방면으로 이어지는 이 노선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2025년 한 해 거의 두 배로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 다만 이란 전쟁은 이 회랑의 종착 구간이 안고 있는 군사적 위험도 함께 키웠다. 정상회의에서는 조직력의 다른 한계도 드러났다.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은 아르메니아가 EU 가입 경로를 밟으면서 EAEU 관세체제에 계속 머물 수 있는지 문제를 제기했다. 푸틴 대통령은 4월부터 두 관세동맹에 동시에 속할 수 없다고 공개 경고했다. 아르메니아는 대러 교역을 당장 포기하지 않으면서 EU와 정치·연결성 관계를 넓히려 했다. 러시아는 여전히 핵심 제도의 중심이지만 회원국의 모든 외교 선택을 단독으로 조직하는 위치와는 거리가 생겼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안보기구에서도 같은 구도가 보였다. 러시아는 올해 CSTO 의장국을 맡아 '다극 세계의 집단안보 — 공동의 목표와 공동의 책임'을 기치로 내걸었고, 5월 26일 모스크바에서 회원국 안보회의서기위원회를 주재했다. 그러나 2024년 말부터 참여를 동결한 아르메니아는 이 회의에도 불참했다. 정상회의는 11월 11일 모스크바에서 열릴 예정이다(하반기 일정). 같은 상반기에 CSTO 회원국인 카자흐스탄이 나토 회원국 튀르키예와 무인기 합작 생산에 합의한 것(제2부 참조)까지 놓고 보면, 러시아 주도 제도의 '자동 결속'은 EAEU와 CSTO 어느 쪽에서도 당연하지 않았다.

 

 

2. 중앙아시아: 같은 성장 지역, 다른 손익계산서

중앙아시아를 하나의 성장률로 표현하면 비교 대상부터 어긋난다. 국제기관들은 서로 다른 국가 묶음과 가정을 썼다. 다음 수치는 합산하거나 우열을 매길 수 있는 동일 표본이 아니다.

 

그림 3. 각 국제금융 기관이 집계한 중앙아시아의 성장 전망

 

유라시아개발은행(EDB)는 같은 전망에서 자체 기준의 중앙아시아 매크로리전(Macro Region) 경제 규모가 2026년 사상 처음 6,000억 달러(약 896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나타났던 무역·자본 유입의 순풍이 약해지고 중동 충격이 역풍으로 바뀐다고 봤다. 다만 이란 전쟁의 효과는 국가마다 반대 방향이다. 가스 증산 여력이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가격과 생산의 수혜 가능성이 있고,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도 간접 수혜를 볼 수 있다. 반면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그리고 남코카서스의 아르메니아·조지아에는 수입물가와 운송비 부담이 더 크다. 7월 전투 재개는 이 전망의 하방 위험을 키웠지만 그 효과는 아직 새 전망치에 반영되지 않았다.

 

상반기 실적도 균일하지 않았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는 우즈베키스탄의 1/4분기 성장률을 8.7%, 타지키스탄을 약 8%로 집계한 반면, 카자흐스탄의 1/4분기 채굴업은 카스피 파이프라인 차질과 텡기즈 사고 등의 영향으로 11.4%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유가 상승도 생산·수송이 막히면 수출액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

 

카자흐스탄 개헌: '현대화'와 권력 재설계가 함께 간 투표

3월 15일 국민투표의 최종 공식 수치(중앙국민투표위원회 결의)는 찬성 795만 4,667표, 반대 89만 8,099표다. 투표 참가자 912만 7,192명(유권자 1,248만 2,613명의 73.12%)을 기준으로 한 찬성률은 87.15%다. 새 헌법은 145석 단원제 쿠룰타이와 부통령직을 두고 기존 헌법의 대부분을 다시 짰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Kassym-Jomart Tokayev)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3월 17일 서명했고, 헌법은 7월 1일 발효됐다. 발효와 함께 첫 쿠룰타이 선거일은 8월 23일로 확정됐다.

 

정부는 제도 현대화와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AP 등 외부 매체는 단원제 전환과 부통령 신설이 대통령 권력의 승계·집중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두 논조 중 하나만 택하면 제도 변화의 성격이 납작해진다. 국민투표는 높은 찬성으로 새 틀을 승인했지만, 경쟁의 조건과 권력 분산 정도는 별도의 검증 대상이다. 8월 쿠룰타이 선거가 그 첫 시험대가 된다.

 

물 외교: 공동행동은 시작됐고, 가장 어려운 당사자는 밖에 있었다

4월 22~24일 아스타나 RES 2026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은 순환경제 파트너십, 빙하 보전 플랫폼, 생물다양성 협력, 환경자료 공유와 2026~2030년 지역행동 틀을 채택·출범시켰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역내 빙하가 담수의 30~60%를 공급하며, 카스피해 수위가 1990년대 이후 약 2m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기후 문제는 환경부 의제에 머물지 않고 수력발전·농업·국경관리·재정의 문제로 들어왔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코쉬테파 운하는 중앙아시아 5개국 합의만으로 통제할 수 없다. 운하는 아무다리야 상류 물을 끌어가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하류국의 유량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기존 지역 물 배분 틀의 정식 당사자가 아니다. 미국 물 연구기관 태평양연구소 공동창립자이자 미 국립과학원 회원인 피터 글릭(Peter Gleick)은 담수를 둘러싼 경쟁과 폭력이 최근 수년간 악화돼 왔으며, 국제 공유 하천의 협력적 관리가 긴장을 낮추는 핵심이라고 지적해 왔다. RES의 데이터·빙하 협력은 필요한 기반이지만, 가장 민감한 물 배분 협상, 특히 틀 밖의 당사자와의 협상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중앙아시아의 '다변화'는 러시아를 지우는 과정이라기보다 위험을 여러 통로에 나누는 과정에 가까웠다. 카자흐스탄은 EAEU와 대러 에너지망을 유지하면서 중국·튀르키예·EU와 산업·방산·운송 협력을 넓혔다. 5월 14일 에르도안 대통령의 아스타나 방문에서는 13건의 합의와 함께 튀르키예 ANKA 무인기의 카자흐스탄 내 합작 생산이 발표됐다. 이는 CSTO 회원국과 나토 회원국 사이의 방산 협력 사례다.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중국과 대형 인프라를 논의하는 동시에 한국 기술로 철도 서비스를 현대화했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높은 성장률과 함께 송금·수입에 대한 대외 노출을 안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가스 가격의 기회를 얻지만 수출 경로와 아무다리야 하류 수량이라는 제약도 함께 갖는다.

 

국가별로 풀어 본 '중첩 외교'

 

이 표에서 같은 행동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다. RES 참여는 카자흐스탄에는 지역 의제 설정, 타지키스탄에는 빙하·수력 관리, 투르크메니스탄에는 아무다리야 하류 수량의 문제다. EAEU 참여도 러시아에는 제도적 영향력,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에는 시장·노동·통관의 연속성이다. 국제기구의 같은 좌석을 같은 진영 선택으로 번역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남코카서스: 평화협정은 국내 정치와 주변 전쟁을 통과해야 했다

이란 전쟁은 남코카서스에 가장 직접적으로 닿았다. 3월 5일 이란과 접경한 아제르바이잔의 나흐츠반에서 드론이 국제공항 터미널과 샤카라바드 마을 인근에 떨어졌다. 아제르바이잔 외교부는 이란 영토에서 발사된 공격으로 민간인 2명이 다쳤다고 발표했고(언론의 부상자 집계는 최대 4명으로 엇갈렸다), 국방부는 접근한 드론 4기 가운데 1기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이란은 관여를 부인했다.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군을 전투태세로 올렸지만, 이후 양국은 정상 통화(3월 8일)와 국경 화물 운행 재개, 아제르바이잔의 대이란 인도적 지원으로 사태를 관리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 정부는 전쟁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중립 입장을 내놨다. 이 사건은 세 나라가 모두 이란과의 국경·에너지·교통 위험을 관리해야 하지만, 어느 한 진영의 일괄 행동에 자동 편입되지는 않았음을 보여줬다.

 

예레반의 5월: EPC 정상회의와 첫 EU 정상회의

5월 4일 예레반에서는 제8차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가 열렸다. 48개국 정상급이 참석한, 아르메니아 독립 이후 최대 규모의 국제 정치 행사였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병행됐고,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화상으로 참여했다. 이 계기에 연쇄로 열린 첫 EU-아르메니아 정상회의(5월 4~5일)에서 양측은 공동선언과 함께 교통·에너지·디지털을 잇는 연결성 파트너십에 서명하고 이를 고위급 대화로 제도화하기로 했다. EU는 4월 21일 이사회 결정으로 신설한 아르메니아 파트너십 임무단(EUPM)과, 유럽평화기금(EPF)을 통한 아르메니아군 첫 지원분 3,000만 유로(약 512억 원) 인도도 확인했다. 국경관리 협력을 위한 EU 국경해안경비청(Frontex)과의 약정도 가서명됐다.

 

EU와 아르메니아 정부는 주권·회복력·교통 연결을 강조했고, 러시아는 EU 관세체제와 EAEU 회원 자격의 양립 불가능성을 부각했다. 아르메니아는 안보 실패에 대한 대러 불신, 러시아 시장과 가스에 대한 경제 의존, EU와 미국의 정치·투자 지원을 동시에 계산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선거 승리와 개헌 능력은 달랐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2025년 8월 미국 백악관에서 평화협정 문안을 가서명(initialling)했다. 2026년 7월 12일 기준으로 전체 조약의 최종 서명·비준은 확인되지 않았다. '평화협정 체결'이라고 쓰면 법적 단계를 앞당기는 셈이다.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아르메니아 헌법이다. 아제르바이잔은 헌법 전문이 인용한 독립선언의 나고르노카라바흐 관련 문구를 영토 주장으로 보고 삭제를 요구한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가서명 문안에서 이미 상호 영토주장을 포기했다고 반박한다. 따라서 '평화협정 자체가 개헌을 명령한다'고 쓰기보다,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최종 비준의 정치·법적 전제로 개헌을 요구한다고 구분해야 한다.

 

6월 7일 총선에서 니콜 파시냔(Nikol Pashinyan) 아르메니아 총리가 이끄는 시민계약당은 잠정 집계로 약 49.8%를 얻어 승리했다. 투표율은 58.9%로 최근 총선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러나 의석 배분은 4위 정당 번영 아르메니아의 봉쇄조항 통과 여부를 둘러싼 법적 분쟁으로 넘어갔고, 7월 상순 헌법재판소가 번영 아르메니아를 배제한 배분을 확정하면서 결과가 최종화됐다(항소 불가·후속 상태). 확정된 의석은 시민계약당 105석 중 64석으로, 단독 정부를 꾸릴 과반이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개헌 국민투표 절차에 필요한 3분의 2인 70석에는 미치지 못한다. 국제 참관단은 선거가 경쟁적이고 유권자에게 실질적 선택을 제공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분열적 언사, 국가·여당의 우위, 선택적 사법 집행 우려를 함께 기록했다. 이를 단순한 '친서방 승리'로 부르면 국내 권력과 법치 논쟁이 사라진다.

 

예레반 지역민주안보센터의 티그란 그리고리안(Tigran Grigoryan) 소장은 헌재 판결이 충분한 득표를 한 정치세력의 원내 진입을 막고 여당에 3석을 추가 배분하는 효과를 냈다고 비판했고, 선거를 앞둔 기고에서는 평화 의제를 한 정당의 명운에 묶는 방식이 '평화도 전쟁도 아닌' 상태의 장기화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분석은 외교적 방향보다 국내에서 개헌 동의를 모을 능력이 평화 절차의 속도를 결정할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둔다.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같은 '서진'으로 묶이지 않았다

조지아에서는 3월 6일 EU 집행위원회가 민주주의 후퇴와 시위 진압을 이유로 정부 관리·외교관의 무비자 입국을 1년 정지했다(2027년 3월 6일까지, 최대 2년 연장 가능). 일반 여권을 쓰는 국민의 무비자는 유지됐다. 조지아 정부는 EU의 조치를 압박과 내정간섭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친러'로 부르는 데 반발했다. 아르메니아가 EU와 첫 정상회의를 연 같은 상반기에 조지아와 EU의 제도적 거리는 더 멀어졌다.

 

아제르바이잔은 유럽행 에너지 공급과 중부회랑의 지위를 활용하면서, 아르메니아와의 국경·교통로 조건에서는 강한 협상력을 유지했다. 동시에 이란 전쟁은 나흐츠반과 남북 교통망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남코카서스의 중심 의제는 대규모 전면전의 억제에서 평화문안의 서명·비준, 헌법, 국경, 회랑 운영, 국내 정당성으로 옮겨갔지만, 주변 전쟁이 그 절차를 다시 안보 문제로 되돌릴 수 있었다.

 

 

4. 한국: 중앙아시아 정상회의 준비와 실제 이행 사이

 

한국 외교의 상반기 유라시아 활동은 두 층으로 나뉜다. 하나는 글로벌 회의 참여다. 6월 15~17일 에비앙 G7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브라질·이집트·인도·케냐 정상과 함께 파트너국 자격으로 참여했다. 프랑스 대통령실이 공개한 결과에는 우크라이나 지원, 이란 문서, 핵심광물, 거시경제 불균형이 포함됐다. 한국은 유라시아 국가들이 직접 노출된 전쟁·에너지·광물 의제에 참여했지만, 초청국 참여 자체가 집행 권한이나 독자 사업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른 하나는 중앙아시아와의 제도화다. 외교부는 2월 범정부 준비위원회 회의를 열고 3월 16일 준비기획단을 출범시켰다. 조현 외교부 장관, 정의혜 외교부 차관보 겸 준비기획단장, 중앙아시아 5개국 주한 대사들이 출범식에 참석했다. 정상회의는 9월 16~17일 한국 개최가 예정돼 있다. 상반기에 확인된 성과는 아직 '준비조직과 의제 조정' 단계다. 정상회의 개최 예정과 구체 사업의 계약·금융조달·착공을 같은 성과로 합산해서는 안 된다.

 

기업 활동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사례가 한 단계 더 나갔다. 2024년 계약한 현대로템 고속열차 가운데 첫 편성이 5월 5일 타슈켄트 중앙역에서 개통식을 갖고 타슈켄트~히바 여객 운행을 시작했다. 13세기 호레즘의 통치자 이름을 딴 '잘롤리딘 망구베르디' 편성이다. 우즈베키스탄 철도공사에 따르면 1,220km 구간의 운행시간은 종전 14시간에서 7시간 30분으로 줄고, 편성은 최고 시속 250km·389석 규모다. 개통을 위해 부하라~히바 구간 약 450km의 전철화와 나보이~부하라 92km 복선화가 선행됐고, 잔여 5개 편성 인도(2027년까지)와 누쿠스 연장이 예정돼 있다. 이 사례는 발표나 양해각서가 아니라 계약 이후 납품·상업 운행으로 넘어간 사업이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철도 현대화와 국내 관광을, 한국 측은 기술·금융·산업 협력을 각각 앞세웠다.

 

 

2026년 하반기에 주목해야 할 지점들

러시아는 전쟁·에너지·EAEU·ASEAN에서 핵심 행위자로 남았지만, 중국과의 가격 협상이나 아르메니아의 외교 선택까지 단독으로 정하지 못했고, 갈라치 사건처럼 전쟁의 유탄이 나토 영토에 닿으면서 서방과의 긴장 관리 부담도 커졌다. 중앙아시아의 다변화는 러시아와의 단절보다 관계의 중첩으로 나타났지만, EAEU 관세·제재 준수처럼 중첩이 불가능해지는 지점도 확인됐다. 남코카서스의 의제는 평화문안과 국경·교통로·국내 정당성으로 이동했으나, 이란 전쟁이 다시 군사 위험을 들여왔고 아르메니아 헌재의 의석 확정은 개헌이라는 관문의 높이를 그대로 남겨뒀다. 한국은 정상회의 준비를 제도화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운행 단계의 기업 사례를 만들었지만, 지역 전체의 사업화와 민간 성과를 판단할 자료는 아직 부족하다.

 

7월 8일 이란 전쟁 재격화, 8월 23일 카자흐스탄 쿠룰타이 선거, 9월 16~17일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 11월 11일 모스크바 CSTO 정상회의, 그리고 연말까지 이어질 아르메니아 개헌·평화협정 논의는 이 조건들을 다시 시험한다. 하반기의 판별 지표는 선언의 수보다 문서의 법적 단계, 예산과 금융조달, 실제 운행·착공, 물가와 교역, 선거·개헌 절차에 놓여 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