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자흐스탄, 민수 원전 건설 앞두고 핵실험장 폐쇄 35주년을 돌아보며

유라시아뉴스 편집국 2026. 8. 31. 18:37

-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은 1991년 폐쇄됐지만 카자흐스탄은 지금도 피해자 등록·보상을 운영하고 연구자들은 과거 주민의 피폭량을 다시 계산 중

 

- 총 456회의 핵실험 경험은 카자흐스탄이 CTBT 발효와 핵군축을 강조하는 외교적 정체성의 중요한 근거

 

- 동시에 카자흐스탄은 민수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어 핵실험의 기억과 전력안보·원자력 안전정책을 어떻게 조정할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라

 

8월 29일 카자흐스탄 세메이에서 아바이주 정부는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 폐쇄 35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같은 날 카자흐스탄 외교부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는 공동성명을 내고 아직 발효하지 못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조속한 발효를 다시 촉구했다. 시험장은 1991년 8월 29일 문을 닫았지만, 폐쇄일은 2009년 카자흐스탄의 제안으로 유엔 ‘국제 핵실험 반대의 날’이 됐다. 세미팔라틴스크는 카자흐스탄에서 과거의 폐허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외교정체성을 만드는 장소다.

 

소련은 세미팔라틴스크 시험장에서 1949년부터 1989년까지 모두 456회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시험장 면적을 약 1만8,500㎢로 설명하며, 1949~1962년에는 지상과 대기권에서 118회의 실험이 이뤄져 방사성 낙진이 주변 거주지역으로 퍼졌다고 정리한다. 카자흐스탄 외교부의 2026년 자료는 전체 456회를 공중 86회, 지상 30회, 지하 340회로 구분한다. 총계는 같지만 세부 분류법은 조금 다르다. 따라서 세미팔라틴스크를 설명할 때 가장 안전한 기준은 ‘456회의 핵실험’이라는 전체 수치이고, 세부 실험유형은 어느 기관의 분류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이곳의 이야기가 1991년에 끝나지 않는 가장 분명한 이유는 현재도 피폭량을 다시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IARC가 카자흐스탄 연구진과 진행하는 SEMI-NUC와 RADKAZ 사업은 과거 시험장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의 장기 건강영향을 추적한다. RADKAZ는 2024년 말 시작돼 약 5만 명의 영향을 받은 주민을 하나의 장기추적 코호트로 구축하고, 사망원인과 개인별 외부피폭량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940~60년대에 오늘날의 역학연구 수준으로 개인별 선량을 측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십 년 뒤의 연구자들이 당시 거주지와 낙진, 의료·등록자료를 다시 연결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이끄는 연구자 가운데 한 명인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블라디미르 드로즈도비치는 2026년 국제 연구진과 함께 15개 정착지의 1만 4,789명을 대상으로 외부피폭 선량을 개인별로 재구성했다. 연구는 거주이력, 당시 낙진 도달시간과 방사선 측정자료, 연령·생활행태 등을 결합했다. 드로즈도비치는 이런 선량 재구성이 누가 얼마나 피폭됐는지뿐 아니라 왜 사람마다 노출량이 달랐는지를 구분하는 데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높은 선량의 건강영향보다 저·중간 선량의 장기위험에는 불확실성이 더 크기 때문에, 세미팔라틴스크 자료가 그 간극을 좁히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법적 책임도 현재형이다. 카자흐스탄에는 1992년 제정된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 피해 시민의 사회보호에 관한 법률’이 여전히 유효하다. 법은 방사선 위험구역과 1949~1965년, 1966~1990년의 거주·근무 기간을 기준으로 일회성 금전보상과 사회보호의 범위를 달리 정한다. 카자흐스탄 전자정부에는 지금도 피해 시민 등록, 증명서 발급, 일회성 국가보상을 신청하는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신청자는 해당 기간에 어느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근무했는지를 입증해야 하고,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면 법원의 사실확인 결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핵실험장의 문은 닫혔지만 국가가 피해를 행정적으로 인정하는 절차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피해자 몇 명인가’라는 질문에는 신중해야 한다. 시험장 주변 방사선 영향권에서 살았던 인구, 법률상 피해자로 등록된 사람, 특정 연구에서 추적하는 코호트, 실제 질환이 확인된 환자는 서로 같은 집단이 아니다. 숫자를 하나로 합치면 규모를 크게 보이게 만들 수는 있지만 무엇을 센 것인지 불분명해진다. 오히려 현재 연구가 왜 5만 명 규모의 자료를 다시 구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보상은 왜 거주지역과 기간에 따라 다르게 계산되는지를 설명하는 편이 피해의 성격을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

 

세미팔라틴스크의 기억은 카자흐스탄 외교의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독립 직후 시험장을 폐쇄하고 소련에서 물려받은 핵무기를 포기한 카자흐스탄은 이후 핵실험 금지와 비확산을 국제무대에서 반복적으로 제기했다. 2026년은 시험장 폐쇄 35주년뿐 아니라 CTBT 서명개방 30주년, 중앙아시아 비핵지대조약 체결 20주년이 겹치는 해다. 카자흐스탄과 CTBTO는 바로 이 세 기념일을 묶어 ‘핵실험 없는 세계’라는 국가외교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동시에 민수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26년 5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첫 원전 건설의 기본 원칙·조건과 러시아 수출신용 제공에 관한 정부간 협정을 체결했다. 로사톰이 울켄 지역에 2기의 VVER-1200 원자로를 건설하는 구상이다. 카자흐스탄 원자력청은 당일 언론 설명을 정정해 발전소 본체와 인프라·안전설비 등을 합친 총사업비를 약 164억 달러(한화 약 22조5천억원)로 제시했다. Reuters의 당일 보도는 원자력청장의 정정 전 발언을 토대로 약 165억 달러로 전했으며, 두 번째 원전 사업자는 중국 CNNC로 정해졌다고 보도했다. 핵무기 실험을 반대하는 것과 민수용 원자력 발전을 이용하는 것은 법적·정책적으로 다른 문제다. 카자흐스탄이 해결해야 할 질문은 ‘핵을 다시 받아들이느냐’가 아니라 세미팔라틴스크의 기억과 불신을 가진 사회에서 전력안보를 이유로 원전을 짓는다면 안전·정보공개·책임체계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만들 수 있느냐다.

 

35년이라는 시간은 세미팔라틴스크를 역사책 속 사건으로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세메이에서는 지금도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는 거주기록을 확인해 피해자를 등록하며, 연구자들은 당시 주민의 피폭량을 새로 계산한다. 동시에 국가는 이 경험을 핵군축 외교의 근거로 사용하면서 민수 원자력 시대를 준비한다. 시험장은 닫혔지만 세미팔라틴스크가 남긴 질문은 보건, 법적 책임, 외교, 에너지 정책으로 형태를 바꿔 계속되고 있다.

 

주요 출처 및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