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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미국 외국대리인 등록법를 옮겼는데 왜 유럽인권법 쟁점이 됐나

유라시아뉴스 편집국 2026. 9. 12. 20:12

- 조지아는 미국 FARA를 모델로 한 외국대리인등록법을 도입했지만, 법문이 미국법과 유사하다는 사실만으로 유럽인권법상 정당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냐

 

- 기존 외국영향투명성법과 새 FARA가 함께 작동하면서 시민사회에 중첩된 규제와 낙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돼

 

- 관련 사건은 현재 유럽인권재판소에 계류 중이며 최종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아

 

 

조지아의 ‘외국대리인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GEOFARA)’을 둘러싼 논쟁에는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조지아 의회에서 법안을 발의·심사한 ‘조지아의 꿈’ 측은 이 법을 미국에서 1938년부터 시행돼 온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본뜬 제도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조지아 의회는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이를 미국 FARA의 ‘직역본’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런데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인권위원은 지난 8월 31일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ECtHR)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이 법이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ECHR)이 요구하는 표현·결사의 자유 보호 기준과 양립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9월 8일 공개된 이 문서는 판결이 아니라 사건 심리에 제출된 제3자 의견서다. 사건은 여전히 유럽인권재판소에 계류 중이다.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미국법을 실제로 옮겼다면 왜 유럽인권법 아래에서는 다시 적법성·정당성·필요성·비례성을 따져야 하는가.

 

 

“미국법을 옮겼다”는 설명 자체는 사실

 

우선 “미국 FARA를 옮겼다”는 조지아 측 설명 자체는 공식 기록으로 확인된다. 조지아 의회는 2025년 2월 법안을 등록하면서 미국 FARA의 번역본이라고 소개했고, 법률문제위원장 아르칠 고르둘라제(Archil Gorduladze)도 같은 해 3월 4일 본회의에서 이를 미국법의 ‘직역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해 4월 1일 의회는 법안을 찬성 86표로 통과시켰고, 법은 5월 31일 발효됐다.

 

조문을 직접 비교해도 유사성은 뚜렷하다. 미국 FARA는 외국 정부·정당·개인·법인 등을 "외국 당사자"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명령·요청·지시 또는 통제를 받아 정치활동, 홍보·정치자문, 자금 모집·지출, 정부기관 상대 활동 등을 수행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외국 당사자의 대리인’, 즉 외국대리인으로 규정한다.

 

조지아의 외국대리인등록법도 거의 같은 구조와 표현을 사용한다. 등록 이후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출하고 활동과 자금 내역을 공개하며, 관련 자료에 표시를 하고 기록을 보존하도록 하는 방식도 유사하다.

 

따라서 “조지아만 형사처벌을 두고 미국 FARA에는 처벌이 없다”는 식의 비교도 정확하지 않다. 미국 FARA 역시 고의적인 법 위반이나 중대한 허위신고 등에 대해 최대 5년의 징역형을 규정한다. 조지아법도 고의적 위반이나 중대한 허위신고 등에 벌금 또는 최대 5년의 징역형을 둘 수 있다.

 

두 법 모두 외교관과 일부 상업·종교·학술·법률활동 등에 적용 예외를 둔다. 미국에서도 단순히 외국자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자동으로 등록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국 당사자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어떤 활동을 수행하는지, 예외조항에 해당하는지를 함께 따지는 구조다.

 

다만 두 법에 모두 ‘최대 5년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체 규제환경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조지아에서는 2024년 제정된 외국영향력투명성법이 폐지되지 않은 채 새 외국대리인등록법과 함께 적용된다.

 

유럽평의회 인권위원 마이클 오플래허티(Michael O’Flaherty)의 의견서는 2026년 3월 인접 법률 개정까지 포함하면 보조금 관련 법 위반에 최대 6년형을 둘 수 있는 등 별도의 형사책임도 추가돼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조지아 외국대리인등록법의 최고형량과 미국 FARA의 최고형량만 일대일로 비교해서는 조지아에서 여러 법률이 겹쳐 작동하는 누적효과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같은 법문인데 쟁점이 되는 것은 ‘복사된 문장’ 다음 단계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가. 유럽평의회 인권위원 오플래허티가 문제 삼는 것은 미국에도 FARA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는 조지아법을 유럽인권협약 제10조의 표현의 자유와 제11조의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로 보고, 그 제한이 법률상 충분히 명확한지, 정당한 목적을 갖는지, 민주사회에서 실제로 필요한지, 목적에 비해 지나치지 않은지를 따져야 한다고 본다.

 

오플래허티는 이번 의견에서 조지아법이 적법성·정당성·필요성·비례성이라는 기준과 양립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또 유럽인권협약 제14조의 차별금지 원칙도 함께 거론했다.

 

베니스위원회의 기존 평가를 인용하면서는 조지아의 외국대리인등록법이 시민사회에 광범위한 행정통제를 가하며, 그 침해 정도가 유럽인권재판소가 문제 삼았던 러시아의 ‘외국대리인’ 법제와 비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대리인’이라는 명칭 자체가 시민사회단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고 활동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여기서 말하는 위축효과란 법적 처벌이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개인이나 단체가 실제 처벌을 받기 전부터 스스로 표현이나 활동을 줄이는 현상을 뜻한다.

 

다만 이는 유럽평의회 인권위원과 베니스위원회의 평가다. 유럽인권재판소가 이미 조지아법을 위법하다고 판결했다는 뜻은 아니다. 유럽평의회 인권위원은 유럽인권협약 제36조 제3항에 따라 사건에 제3자 의견을 제출할 수 있지만, 재판부를 대신해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는다.

 

이번 외국대리인등록법 사건인 **‘조지아 청년변호사협회 외 대 조지아 2차 사건’(Georgian Young Lawyers’ Association and Others v. Georgia (no. 2))**은 사건번호 15763/25로 2026년 9월 12일 현재 계류 중이다.

 

2024년 외국영향력투명성법을 다투는 별도 사건은 사건번호 31069/24다. 인권위원은 새 외국대리인등록법이 기존 외국영향력투명성법을 대체하지 않았고 두 법이 함께 적용된다는 점도 별도의 문제로 지적한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정확한 표현은 “유럽평의회 인권위원이 조지아법이 유럽인권협약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이지, “유럽인권재판소가 조지아법을 위법이라고 판결했다”가 아니다.

 

‘외국대리인’이라는 같은 제도도 법적 환경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베니스위원회의 2025년 의견도 이 지점에 초점을 맞췄다. 위원회는 조지아법의 주요 개념과 정의 대부분이 미국 FARA에서 옮겨졌다고 평가할 정도로 높은 문언 유사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법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만으로 국제기준을 충족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같은 문장을 사용하더라도 그 나라의 기본적인 법 원칙과 판례, 행정기관의 독립성, 사법적 통제 등 법이 실제로 작동하는 제도적 환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위원회 측은 조지아 외국대리인등록법의 광범위하고 모호한 개념, ‘외국 당사자의 대리인’이라는 명칭이 낳을 수 있는 위축효과, 당시 집행기관이던 반부패국(Anti-Corruption Bureau)의 폭넓은 재량과 독립성 문제, 형사제재가 지나치지 않은지 여부 등을 문제 삼았다. 결론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종합해 외국대리인등록법 체계가 법치주의와 시민사회의 활동공간, 민주적 자유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평가하고 법의 폐지를 권고했다. 보조금 관련 법률 개정에 대해서도 자의적·차별적으로 적용될 가능성과 절차적 보호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폐지를 권고했다.

 

실제 조지아의 집행구조도 법 제정 뒤 바뀌었다. 처음에는 반부패국이 핵심 집행기관이었지만, 2025년 12월 법 개정에 따라 2026년 3월 2일부터 등록·감독과 관련된 주요 권한은 조지아 국가감사원(State Audit Office of Georgia)과 감사원장(Auditor General)에게 넘어갔다.

 

따라서 베니스위원회가 2025년 당시 반부패국의 재량과 독립성에 대해 제기했던 비판을 2026년의 현행 집행체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는 최초 법안이나 미국 원문만 읽어서는 현재 조지아에서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점도 보여준다.

 

 

‘미국에도 있다’와 ‘유럽인권법에 맞는다’는 서로 다른 명제다

 

결국 조지아 논쟁에서는 두 가지를 분리해야 한다. 첫째, 조지아의 외국대리인등록법이 미국 FARA의 상당 부분을 옮겼다는 주장은 조문과 조지아 의회의 공식 설명으로 확인된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그 법이 자동으로 유럽인권협약에도 부합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이는 별도의 법적 판단이다. 비교법에서는 한 국가의 법률이나 법제도를 다른 국가가 받아들이는 현상을 **‘법이식’**이라고 부른다. 조지아 사례를 법이식의 문제로 보면 쟁점은 더 선명해진다.

 

베니스위원회가 강조했듯 법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만으로 그 법을 둘러싼 헌법적·인권법적 정당성까지 함께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법률 조항뿐 아니라 그 나라의 기본 법원칙과 판례, 집행기관, 사법적 통제, 시민사회의 환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 법안을 발의·심사한 ‘조지아의 꿈’ 측이 “미국에서도 시행되는 법”이라는 점을 정당화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유럽평의회 측은 그 다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그 제도가 조지아에서 실제로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규율하는가. 그리고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도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수준인가. 유럽인권재판소가 앞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으로도 논쟁의 초점은 분명하다. 조지아법이 미국 FARA와 문언상 상당히 닮았다는 점은 공식 기록과 조문 비교로 확인된다.

 

이제 남은 질문은 비슷한 법률이 서로 다른 법질서에서도 같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느냐다. 조지아의 외국대리인등록법 논쟁은 법률의 문장을 가져오는 것과 그 법의 헌법적·인권법적 정당성까지 가져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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