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서 다큐멘터리 「박노학, 귀향의 길(Пак Но Хак. Дорога домой)」 상영
사할린과 고국을 이은 3만 통의 편지…박노학의 30년 귀환운동 조명
사할린 한인의 고국 귀환운동을 이끈 박노학(1914~1988)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박노학, 귀향의 길(Пак Но Хак. Дорога домой)」이 9월 12일 오후 5시 모스크바 '러시아민족의집(Дом Народов России)'에서 상영됐다. 60분 분량의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된 뒤 해방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한인들의 귀환 문제를 박노학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조명한다. 이날 상영회에는 고려인과 재외국민 등 재외동포100여 명이 참석했다.

사할린 한인 3세 감독이 기록한 귀환의 역사
영화는 2026년 러시아에서 제작된 신작으로, 사할린 출신의 한인 3세 다큐멘터리 감독 안톤 도카(Антон Дока)가 연출했다. 지난 8월 26일 유즈노사할린스크 '옥탸브리(Октябрь)' 영화관에서 열린 영화제 '섬의 스크린-사할린 작가들'에서 처음 공개된 뒤 이번에 모스크바 관객과 만났다. 제작은 모스크바 사할린한인회의 발의로 시작됐다. 김태익 모스크바 사할린한인회장이 기획을 총괄하고, 사할린 한인2세인 박승의 前사할린국립대 교수가 시나리오 집필과 자료 조사를 맡았다. 박노학의 아들 박창규 씨를 비롯해 박노학 연구자인 오일환 교수와 방일권 교수, 최상구 지구촌동포연대(KIN - Korean International Network) 대표, 사할린 한인 문제를 다뤄 온 일본 변호사 다카기 겐이치, 진 율리아 사할린주 향토박물관 부관장 등도 제작에 참여했다.

안톤 도카 감독에게 사할린 한인은 낯선 소재가 아니다. 그는 앞서 사할린 한인 1·2세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와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토박이(Местные)」를 세르게이 하(Сергей Ха) 감독과 함께 만들었다. 약 2년 6개월에 걸쳐 러시아와 한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촬영한 이 작품은 2025년 8월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공개된 뒤 러시아 안팎에서 상영됐다. 이번 「박노학, 귀향의 길」은 그 기록 작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3만 통의 편지가 이은 사할린과 고국
박노학은 1914년 6월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1943년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다. 해방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는 일본인과 혼인한 덕분에 1958년에야 일본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귀환에 머물지 않았다. 이듬해인 1959년 일본에서 '사할린억류귀환한국인회'를 조직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30년간 사할린에 남겨진 동포들의 귀환운동을 이끌었다.

그의 활동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사할린과 한국의 가족을 연결한 '편지'였다. 당시 대한민국과 소련 사이에 외교관계가 없어 사할린 한인들은 한국의 가족과 직접 서신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사할린에서 일본의 박노학에게 편지가 도착하면 그는 이를 한국의 장남 박창규 씨에게 보냈고, 박창규 씨는 수취인을 찾아 전국의 행정기관을 수소문한 끝에 가족에게 편지를 건넸다. 부자가 약 30년에 걸쳐 전달한 편지는 3만여 통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지는 기록으로도 남았다. 박노학은 오간 편지를 토대로 귀국 희망자의 국적과 거주지역, 귀국 희망 형태 등을 정리한 명부를 작성했다. 이른바 '박노학 명부'에는 약 7천 명의 사할린 한인 정보가 담겼으며, 영화 제작 과정에서 공개된 자료에는 6천924명으로 기록돼 있다. 이 명부는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 의사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자료로서, 이후 한국·일본·소련이 사할린 한인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근거로 쓰였다.

가족상봉에서 모국 방문으로…그가 낸 귀환의 길
영주귀국이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박노학은 우선 헤어진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일본 정치권 등에 지속적으로 협조를 요청한 끝에 1984년 9월 사할린 동포 10명이 도쿄에서 한국의 가족과 상봉했다. 전후 사할린 동포의 첫 공식 출국이자 가족상봉으로 기록된 사례였다. 이어 그는 고령이나 병환으로 일본까지 오기 어려운 한국의 가족들을 위해, 사할린 동포가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그러나 박노학은 자신이 추진한 모국 방문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는 1988년 3월 세상을 떠났고, 석 달 뒤인 같은 해 6월 일본의 사할린잔류 한국·조선인 문제 의원간담회가 소련을 방문해 일본 경유 모국 방문을 요청했다. 그 결과 같은 해 9월 일본을 경유한 모국 방문이 처음으로 실현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8년 그의 공로를 기려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다. 2014년에는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십시일반 모금해 경기도 안산 사할린고향마을에 그의 흉상을 세웠으며, 재외동포청은 2025년 7월 박노학을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해 그의 활동을 다시 조명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귀향
영화의 원제 ‘Дорога домой’는 우리말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사할린 동포들에게 귀향은 단순히 고국의 땅을 다시 밟는 일이 아니었다. 오랜 이산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가족이 서로 다른 곳에 남아 살아야 했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박노학이 평생 열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이동의 길이 아닌 흩어진 가족이 다시 만나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은 이어졌지만, 모든 이가 그 길의 끝에 도착하지는 못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이루어진 귀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게 열린 길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끝내 닿지 못한 길로 남아있다. 모스크바의 스크린에서 다시 호명된 박노학의 이름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과 이루어지지 않은 만남이 남아 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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