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회 세계유목민경기는 최종 109개국 약 3,000명이 참가한 국제행사로 성장했지만, 대회의 핵심 의미는 메달 경쟁보다 사라질 위험에 놓였던 유목문화의 기술과 기억을 다시 전승하는 데 있어
- UNESCO 자료에 따르면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약 220개의 전통경기가 목록화됐고 관련 전통경기 실천자는 2007년 약 2,000명에서 2020년 5만5,000명 이상으로 늘어
- 세계유목민경기는 전통 승마·씨름·공예 등 ‘몸의 기억’을 현대 스포츠와 교육·문화산업으로 연결하는 실험이며, 2028년 제7회 대회 개최권은 폐막식에서 러시아 타타르스탄으로 공식 이양
8월 31일부터 9월 6일까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와 이식쿨 일대에서 열린 제6회 세계유목민경기는 규모만 보면 이미 대형 국제행사다. 참가국 수는 단계별로 달랐다. 8월20일 조직위에는 112개국에서 신청이 들어왔고 개막식 퍼레이드에는 104개국 선수단이 참가했으며, 폐막 후 키르기스 국가체육기관의 최종 집계는 109개국·약 3,000명이었다. 신청·퍼레이드·최종 참가라는 정의가 다른 수치다. 종목 수 역시 사전 공식 프로그램이 43개를 안내했지만 폐막 후 집계는 42개로 달라 기준 차이가 남아 있다. 2014년 첫 대회가 19개국 583명, 경쟁 10개 종목에서 출발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12년 만에 참가 범위와 제도적 규모가 크게 확대된 셈이다.
그러나 이 대회를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한 숫자는 메달 수보다 220개와 5만5,000명이다. UNESCO는 2021년 키르기스스탄의 ‘Nomad games, rediscovering heritage, celebrating diversity’를 무형문화유산 보호 모범사례 등록부에 올렸다. 여기서 UNESCO가 인정한 것은 세계유목민경기라는 국제행사 자체가 아니라 전통경기를 조사하고 기록하며 공동체 안에서 다시 전승해 온 보호 프로그램이다. UNESCO 신청서 49251-EN.pdf 6쪽은 약 220개의 전통경기가 목록화됐고 전통경기 실천자가 2007년 약 2,000명에서 2020년 5만5,000명 이상으로 늘었다고 기록한다.
그 배경에는 중앙아시아의 20세기 사회변동이 있다. UNESCO 자료는 소련 시기 정착화 과정에서 유목생활과 결합된 여러 문화 요소가 약화됐고, 독립 이후 전승 공동체들이 지식의 소멸과 젊은 세대의 관심 저하를 중요한 문제로 인식했다고 설명한다. 전통경기는 규칙만 기록한다고 살아남는 문화도 아니다. 말을 다루는 법과 몸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방식, 활을 당기거나 씨름하는 자세처럼 상당수 지식은 보고 따라 하며 몸으로 익힌다. 전승자가 사라지면 문서만으로 복원하기 어려운 ‘몸의 기억’이 함께 사라질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볼로트 톡토바예프 법학박사·교수는 이번 대회 현장에서 유목문명을 오늘날 그대로 되풀이해야 할 생활방식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인이 다시 과거의 생활조건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만들어진 역사와 정신적·문화적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세계유목민경기는 과거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민속쇼보다 오래된 기술과 기억을 현대의 경기규칙과 교육, 국제행사라는 형식에 옮겨놓는 장치에 가깝다.
유목문화를 낭만적인 ‘초원의 고립된 삶’으로만 그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중앙유라시아사를 연구해온 김호동 서울대 명예교수는 유목민과 오아시스 주민을 농경 정주문명의 주변부가 아니라 이동과 교역, 전쟁과 정치적 네트워크를 통해 동서 지역을 연결한 역사적 행위자로 설명해왔다. 세계유목민경기에서 보존되는 승마와 사냥, 씨름, 공예의 의미도 단순한 옛 놀이에 그치지 않는다. 변화하는 자연환경에서 이동하고 동물을 다루며 다른 공동체와 교류했던 사회의 기술과 경험이 그 안에 들어 있다.
대회가 커지면서 문화유산은 국가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World Nomad Games’ 상표권을 국가 자산으로 관리하며 이를 문화외교와 국가이미지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육성하고 있다. 2014·2016·2018년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렸던 대회는 2022년 튀르키예, 2024년 카자흐스탄을 거쳐 올해 다시 발상지로 돌아왔다. 9월6일 촐폰아타 폐막식에서는 키르기스스탄이 제7회 대회 개최권을 타타르스탄 대표에게 공식 이양했고, 후속 발표는 2028년 카잔 개최로 안내했다. 한 국가의 전통문화 프로젝트가 여러 국가가 번갈아 개최하는 국제 플랫폼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 과정에는 긍정적인 효과와 새로운 문제가 함께 생긴다. 국제행사는 젊은 세대가 전통경기를 배우고 공예·복식·음악·음식에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WIPO에서 20년 이상 전통지식과 전통문화표현을 다뤄온 다프네 조그라포스-존슨은 공동체가 오랫동안 전승해온 문양과 음악, 이야기, 의례가 국가브랜드나 상품으로 이용될 때 누가 사용을 결정하고 누가 이익을 얻는지라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개인 창작자를 전제로 한 일반적인 저작권만으로 공동체가 함께 만든 전통문화의 권리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따라서 세계유목민경기의 성과를 메달표로만 평가하면 대회의 취지를 놓치게 된다. 더 중요한 질문은 대회가 끝난 뒤에도 전통경기를 가르칠 사람이 남는지, 청년이 그 기술을 배우는지, 공예가와 전승 공동체가 문화산업 성장의 혜택을 함께 얻는지다. 확인된 UNESCO 자료와 현지·국제 전문가의 해석을 종합하면 이 대회는 사라질 위험에 놓였던 몸의 기술과 공동체 기억을 현대의 스포츠·교육·문화행사로 다시 전승하는 실험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메달은 일주일 만에 결정되지만 문화유산의 성패는 다음 세대가 그 기술을 계속 사용할 때 비로소 확인된다.
주요 출처 및 참고자료
- World Nomad Games, 제6회 대회 공식 일정·장소. https://worldnomadgames.org/en/press-release-about-the-date/
- World Nomad Games, 대회 역사 및 2014년 제1회 규모. https://worldnomadgames.org/en/history/
-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mad games, rediscovering heritage, celebrating diversity」 보호프로그램 개요. https://ich.unesco.org/en/BSP/nomad-games-rediscovering-heritage-celebrating-diversity-01738
- UNESCO 신청서 Form ICH-03, 49251-EN.pdf, p.6 — 약 220개 전통경기 목록화, 실천자 2007년 약 2,000명→2020년 5만5,000명 이상. https://ich.unesco.org/doc/src/49251-EN.pdf
- UNESCO ICH, Decision 16.COM 8.c.4, 2021. https://ich.unesco.org/en/Decisions/16.com/8.c.4
- 키르기스스탄 내각, World Nomad Games 상표권·국가브랜드 관련 발표. https://www.gov.kg/ru/post/s/25857-kyrgyzstan-duinoluk-kocmondor-oyundarynyn-brendine-ozgoco-ukuktardy-aldy
- 키르기스 대통령 산하 국가전략이니셔티브연구소(NISI), 내각 의장의 9월6일 폐막식 공식 발표 — 다음 대회가 타타르스탄에서 이어짐을 명시. https://nisi.gov.kg/en/news/ministrler-kabinetinin-t%D3%A9ragasy-adylbek-kasymaliev-vi-d%D2%AFjn%D3%A9l%D2%AFk-k%D3%A9chm%D3%A9nd%D3%A9r-oyundarynyn-zhabylysh-azemine-katyshty/
- Kabar (키르기스 국영통신), 조직위 신청 집계 112개국, 2026.8.20. https://en.kabar.kg/news/kyrgyzstan-expects-athletes-from-112-countries-at-wng/
- Kabar (키르기스 국영통신), 개막 퍼레이드 104개국, 2026.9.1. https://en.kabar.kg/news/athletes-from-104-countries-parade-at-wng-the-opening/
- Kabar (키르기스 국영통신), 제6회 폐막 후 국가체육기관 참가 규모 집계: 약 3,000명·109개국·42개 종목, 2026.9.6. https://en.kabar.kg/news/about-3000-athletes-from-109-countries-participate-in-world-nomad-games/
- Kabar (키르기스 국영통신), 9월6일 폐막식 제7회 개최권 타타르스탄 공식 이양·2028 카잔 개최 안내. https://en.kabar.kg/news/kyrgyzstan-passes-baton-of-7th-world-nomad-games-hosting-to-tatarstan/
- Kabar (키르기스 국영통신), 볼로트 톡토바예프 교수 인터뷰, 2026.9.4. https://ru.kabar.kg/news/vi-vik-igry-kochevnikov-znakomyat-mir-s-istoriej-kyrgyzov-bolot-toktobaev/
- Daphne Zografos-Johnsson, WIPO, 「Traditional cultural expressions and the World Nomad Games」, 2026.8.4. https://www.wipo.int/en/web/wipo-magazine/articles/traditional-cultural-expressions-and-the-world-nomad-games-10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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