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비서방 경제 무대'가 된 러시아의 SPIEF, 2026년 포럼이 보여준 변화

유라시아뉴스 편집국 2026. 6. 12. 16:17

6월 3~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실용적 대화: 안정적 미래로 가는 길"을 주제로 열린 제29회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t. Petersburg International Economic Forum, SPIEF) 2026은 러시아가 서방 제재 장기화 속에서도 비서방 국가들과 경제·외교 접점을 확대하려는 방향을 보여준 행사였다. 안톤 코뱌코프(Anton Kobyakov) SPIEF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겸 대통령보좌관에 따르면 올해 포럼에는 142개국 대표 2만4,500명 이상이 참석했고, 총 1,084건, 6조6,420억 루블(한화 약 139조8,000억 원, 2026년 6월 10일 1루블=21.046원 기준) 규모의 협정이 체결됐다. 코뱌코프 사무총장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공식 대표단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올해 주빈국은 러시아와 수교 100주년을 맞은 사우디아라비아였다.

 

2025년 SPIEF에서 공개된 협정 규모는 같은 1,084건, 6조4,810억 루블(한화 약 136조4,000억 원, 같은 환율 단순 적용 기준)이었다. 공식 집계 기준으로 건수는 같고 금액은 소폭 늘었지만, 포럼의 메시지는 더 분명하게 중국,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으로 이동했다. 다만 포럼장에서 발표되는 금액은 실제 집행 완료 투자액이 아니라 협정, 양해각서, 장기 프로젝트 계획을 포함하는 계약·협정 총액이므로, 개별 협정의 투자 구조, 제재 리스크, 금융 조달 조건, 이행 일정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주요 인사들의 기조연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6월 5일 본회의 기조연설에서 세계경제가 구조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다극화, 경제 주권, 기술 주권, 새로운 국제 금융 질서를 강조했다. 크렘린이 공개한 연설문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서방 중심 무역·금융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고 설명했고, 러시아의 낮은 국가채무와 거시경제 안정성을 부각했다.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개서한으로 제안한 직접 회담에 대해 "현재로서는 의미가 없다"며 거부했고, AP통신에 따르면 해당 서한을 "무례하다"고 평가하면서 기존 정치·군사 노선을 바꾸지 않았다.

 

한정(Han Zheng) 중국 국가부주석은 같은 본회의에서 글로벌 거버넌스 구상(Global Governance Initiative) 이행을 주제로 연설했다. 중국 외교부와 CGTN에 따르면 한정 부주석은 시진핑 주석의 인사를 전하며 중국과 러시아가 양국 정상 간 합의를 바탕으로 전략적 상호신뢰와 호혜 협력을 심화하겠다고 밝혔고, 양국 협력이 제3국을 겨냥하지 않으며 외부 영향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정 부주석은 포럼 기간 미르지요예프 대통령, 하산 대통령과도 별도로 교류했다.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러시아를 "시간으로 검증된 전략 파트너이자 동맹"이라고 표현하고, 양국 관계가 단순 상품 교역에서 산업 공급망, 기술 동맹, 공동 설계, 현지화 생산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거시지역 차원에서 산업 잠재력, 자원, 시장, 기술 역량을 하나로 묶는 "유라시아 기술 산업화 벨트(Eurasian Belt of Technological Industrialization)" 구상을 제안했다. 트렌드(Trend)에 따르면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기술·산업 협력이 양자 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세계 생산사슬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지난 10년간 우즈베키스탄 경제 규모가 500억 달러에서 1,470억 달러로 커졌고 2026년 성장률이 8%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사미아 술루후 하산(Samia Suluhu Hassan) 탄자니아 대통령도 본회의 연설자로 나섰다. 러시아 분석매체 리얼리스트(Realist) 등의 본회의 정리에 따르면 하산 대통령은 탄자니아의 투자 개방성을 강조하며 2026년 GDP 성장률이 6.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고, 7월 2일 에어탄자니아의 모스크바-잔지바르 직항 개설 계획과 2030년까지 러시아 관광객 50만 명 유치 목표를 밝혔다. 본회의 사회는 인도 유력매체 인디아투데이(India Today)의 기타 모한(Geeta Mohan) 국제부 에디터가 맡았는데, 이 또한 포럼이 글로벌 사우스를 향해 무대를 구성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SPIEF 2026에서 러시아·유라시아 국가와 기업의 성과

올해 포럼에서 공개된 개별 성과 가운데 규모가 확인된 사례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시가 있다. 타스(TASS)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베글로프(Alexander Beglov)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지사는 시가 이번 포럼에서 투자협정 41건을 포함해 총 74건, 7,317억2,000만 루블(한화 약 15조4,000억 원) 규모의 협정을 체결했고, 이는 포럼 역사상 세 번째로 큰 규모라고 밝혔다.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사이에서는 포럼 전날인 6월 4일 미르지요예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양자회담을 열고, 우즈베키스탄 첫 원전의 첫 전력장치 건설 개시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했다. 영국 경제전문매체 bne 인텔리뉴스(bne IntelliNews)는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이 원전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과 국제 기준에 따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같은 매체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러시아 교역은 2026년 들어 20% 증가했고,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타타르스탄 등 러시아 지역과의 지역 간 산업 프로젝트는 약 50억 달러 규모이며 추가로 5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파이프라인이 준비되고 있다. 리얼리스트의 본회의 정리에 따르면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지난 10년간 양국 교역이 40억 달러에서 130억 달러로 늘었고 공동 프로젝트 포트폴리오가 500억 달러를 넘는다고 밝혔다.

 

SPIEF 2026러시아 측 평가 — 당국의 '성과'와 독립매체의 '균열'

포럼 폐막 직후 러시아 당국의 평가는 '고립 실패의 입증'에 초점을 맞췄다. 코뱌코프 사무총장은 6월 6일 결과 발표에서 142개국 참가와 1,084건 협정 체결을 들어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여전히 강하다고 평가했고, 서방 투자자들이 러시아 시장 복귀에 신중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러시아 정치·경제를 전문 취재하는 독립계 매체 모스크바타임스(The Moscow Times)의 브롤리 벤슨(Brawley Benson) 기자는 포럼 기간인 6월 5일 분석기사 「화려한 SPIEF, 그 틈으로 비친 러시아 경제의 균열(Cracks in Russia's Economy Shine Through at SPIEF)」에서, 화려한 행사 이면에서 러시아 전시경제가 전쟁을 계속 지탱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위 기사에서 러시아 정치경제 분석가 닉 트리켓(Nick Trickett)은 올해 SPIEF에서 체제와 국가 내부의 경쟁적 요구들이 매우 크게 드러났으며, 이를 조율할 역량이나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벤슨 기자는 푸틴 대통령이 본회의에서 경제 우려를 일축하며 러시아가 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완만한 성장 궤적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기업 부담 완화가 다른 부문의 압박으로 전가되는 구조적 딜레마가 있다고 전했다.

 

유라시아 지역의 관점 — 교역에서 산업·기술 파트너십으로

우즈베키스탄 국제중앙아시아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Central Asia, IICA)는 포럼 직후인 6월 6일 발표한 분석에서 SPIEF 2026 프로그램이 국제무역, 운송회랑, 디지털 기술, 인공지능, 에너지, 산업, 인적자본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고 정리했다. IICA는 중앙아시아-러시아 경제협력 의제가 인공지능, 디지털 기술, 혁신센터, IT 기업 협력, 원자력 인력 양성, 국제남북교통회랑(International North-South Transport Corridor, INSTC)으로 확장됐으며, 협력의 초점이 전통적 교역에서 장기 투자와 산업 파트너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점에서 SPIEF는 러시아만의 행사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산업정책, 물류전략, 에너지 협력 의제를 조정하는 장으로도 기능한다.

 

서방의 시선 — 정치 메시지와 외교적 한계에 주목

서방 통신사들의 포럼 평가는 푸틴 대통령의 정치 메시지에 집중됐다. AP통신은 6월 5일 푸틴 대통령이 본회의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회담 제안을 거부하고, 서방의 일방적 제재와 러시아 국가자산 동결이 달러·유로 등 국제 통화의 위상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공영방송 PBS도 같은 날 푸틴 대통령의 회담 거부와 제재 비판을 포럼의 핵심 장면으로 전했다.

 

미국 하버드대 벨퍼센터(Belfer Center)의 러시아 분석 프로젝트 '러시아 매터스(Russia Matters)'는 6월 5일자 주간 리뷰에서 포럼 주간의 외교전을 함께 정리했다. 같은 리뷰가 블룸버그를 인용해 전한 바에 따르면, 드미트로 쿨레바(Dmytro Kuleba) 우크라이나 전 외무장관은 6월 4일 독일·프랑스·영국(E3)의 평화협상 주도 시도에 대해 "E3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결정적 지렛대는 갖고 있지만 러시아에 대한 지렛대는 없다"며, 모스크바가 E3를 러시아 측 제안의 전달 통로로 활용해 키이우에 양보를 압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SPIEF 무대에서 회담을 거부한 직후 형성된 유럽 주도 협상 구도의 한계를 짚은 평가다.

 

유라시아 경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베를린 기반 매체 bne 인텔리뉴스는 6월 6일 분석에서, 러시아가 포럼에서 과시한 비서방 파트너십에도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이 매체는 우즈베키스탄 사례를 들어, 러시아와 원전·산업 협력을 심화하는 국가들조차 중국과의 교역·투자 증가율이 더 빠르며, 모든 주요 강대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다극(multi-vector) 외교를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사우스의 '실리 외교'

글로벌 사우스 매체들은 포럼을 러시아의 고립 여부보다 자국과 신흥경제권의 실리라는 관점에서 다뤘다. 인도 경제매체 비즈니스투데이(BusinessToday)는 6월 6일 폐막 기사에서 SPIEF 2026이 약 6조6,400억 루블 규모의 협정과 함께 마무리됐으며, 이는 변화하는 세계 경제질서의 중심에 서려는 러시아의 노력을 보여주는 최근 수년 새 최대급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인디아투데이의 기타 모한 국제부 에디터가 본회의 사회를 맡은 것 자체가, 인도 언론이 이 무대를 러시아-서방 대립이 아닌 다극 질서 논의의 장으로 소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타르 기반 국제매체 알자지라(Al Jazeera)는 6월 5~6일 보도에서 포럼의 양면을 함께 전했다. 알자지라는 푸틴 대통령이 본회의에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비판을 사방에서 듣는다"며 경제 위기론을 일축했지만, 전쟁 비용과 제재 부담 속에 러시아 경제가 3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역성장을 기록했고 물가 상승, 증세, 20년 만의 고금리가 시민 생활을 압박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한 우크라이나 드론이 포럼 개막일과 폐막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일대를 타격하며 행사 기간 내내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사우스 매체의 이런 보도는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지는 않았지만, 그 사실이 곧 경제적 제약의 해소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2025년과 비교한 2026년 SPIEF의 특징

2025년과 비교하면 2026년 SPIEF의 특징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공식 집계 기준 협정 건수는 같고 금액은 소폭 늘었지만, 포럼의 정치경제적 메시지는 더 분명하게 비서방 경제권과 글로벌 사우스 협력으로 이동했고, 동시에 10년 만의 미국 공식 대표단 참가라는 변화도 있었다. 둘째, 중앙아시아,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단순 참가국이 아니라 '유라시아 기술 산업화 벨트' 같은 산업·기술 구상의 제안자로 부상했다. 셋째, 러시아 당국은 낮은 부채와 대규모 협정 체결을 내세웠지만, 독립매체와 외부 분석은 성장 둔화와 재정 압박, 전시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함께 제기했다.

 

SPIEF는 한때 러시아가 서방 기업과 투자자를 불러들이는 '러시아판 다보스'에 가까웠다. 2026년의 SPIEF는 러시아가 서방과의 경제 관계 회복을 기다리는 행사가 아니라, 제재 이후의 교역망, 금융망, 산업망을 비서방 파트너들과 재편하려는 무대에 가까웠다. 다만 포럼장에서 발표된 협정과 실제 투자 이행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으며, 그 거리가 얼마나 좁혀지는지는 개별 협정의 이행 경과를 통해 확인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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